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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6 증일아함경 제5권 11.불체품 12.일입도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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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6 증일아함경 제5권 11.불체품

 

11. 불체품(不逮品)
不逮品第十一


[ 1 ]
이와 같이 들었다.
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한 법을 없애야 하느니라. 그러면 나는 그대들이 ‘아나함(阿那含)을 이룰 것이다’라고 증명해주리라. 어떤 것이 그 한 법인가? 탐욕(貪欲)을 말한다. 모든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탐욕을 없애야 하느니라. 그러면 나는 그대들이 ‘아나함을 얻을 것이다’라고 증명해주리라.”
爾時,世尊告諸比丘:“當滅一法。我證卿等成阿那含。云何爲一法?所謂貪欲。諸比丘,當滅貪欲。我證卿等得阿那含。”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탐심과 음욕에 물들기 때문에
중생들은 나쁜 세상에 떨어지나니
마땅히 부지런히 힘써 탐욕 버려라 .
그러면 곧 아나함을 이룰 것이다.
爾時,世尊便說此偈:
貪婬之所染,
衆生墮惡趣,
當懃捨貪欲,
便成阿那含。


그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 2 ]
이와 같이 들었다.
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한 법을 없애야 하느니라. 그러면 나는 그대들이 ‘아나함(阿那含)을 이룰 것이다’라고 증명해주리라. 어떤 것이 그 한 법인가? 성냄[瞋恚]을 말한다. 모든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성냄을 없애야 하느니라. 그러면 나는 너희들이 ‘아나함을 얻을 것이다’라고 증명해주리라.”
爾時,世尊告諸比丘:“當滅一法,我證汝等成阿那含。云何爲一法?所謂瞋恚是。諸比丘,當滅瞋恚。我證汝等得阿那含。”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설하셨다.

성내는 마음에 물들기 때문에
중생들은 나쁜 세상에 떨어지나니
마땅히 부지런히 힘써 성냄을 버려라.
그러면 곧 아나함을 이룰 것이다.
爾時,世尊便說此偈:
瞋恚之所染,
衆生墮惡趣,
當懃捨瞋恚,
便成阿那含。


그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 3 ]
이와 같이 들었다.
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한 법을 없애야 하느니라. 그 한 법을 버리면 나는 너희들이 ‘아나함을 이룰 것이다’라고 증명해주리라. 어떤 것이 그 한 법인가? 어리석음[愚癡]을 말한다. 그런 까닭에 모든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어리석음을 없애야 하느니라. 그러면 나는 너희들이 ‘아나함을 얻을 것이다’라고 증명해주리라.”
爾時,世尊告諸比丘:“當滅一法,捨離一法。我證汝等成阿那含。云何爲一法?所謂愚癡。是故諸比丘當滅愚癡,我與卿等證阿那含。”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설하셨다.

어리석음에 물들기 때문에
중생들은 나쁜 세상에 떨어지나니
마땅히 부지런히 힘써 어리석음을 버려라.
그러면 곧 아나함을 이룰 것이다.
爾時,世尊便說此偈:
愚癡之所染,
衆生墮惡趣,
當懃捨愚癡,
便成阿那含。


그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 4 ]
이와 같이 들었다.
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한 법을 없애야 하느니라. 그 한 법을 버리면 나는 너희들이 ‘아나함을 이룰 것이다’라고 증명해주리라. 어떤 것이 그 한 법인가? 간탐(慳貪)을 말한다. 그런 까닭에 모든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간탐을 버려야 하느니라. 그러면 나는 너희들이 ‘아나함을 얻을 것이다’라고 증명해주리라.”
爾時,世尊告諸比丘:“當滅一法,捨離一法。我證汝等成阿那含。云何爲一法?所謂慳貪。是故諸比丘當滅慳貪,我證汝等阿那含。”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설하셨다.

간탐에 물들기 때문에
중생들은 나쁜 세상에 떨어지나니
마땅히 부지런히 힘써 간탐을 버려라.
그러면 곧 아나함을 이룰 것이다.
爾時,世尊便說此偈:
慳貪之所染,
衆生墮惡趣,
當懃捨慳貪,
便成阿那含。


그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 5 ]
이와 같이 들었다.
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 중생들에게서 애초부터 이 한 법[一法:마음]처럼 항복 받을 수도 없고 때를 맞추기도 어려우며, 온갖 괴로운 과보를 받게 하는 것을 보질 못했다. 그 법은 곧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비구들아, 이 마음은 항복 받을 수도 없고 때를 맞추기도 어려우며 온갖 괴로운 과보만 받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비구들아, 마음을 잘 분별해야 하고 또 잘 생각하며 모든 선(善)의 근본을 잘 기억해야 하느니라. 모든 비구들아, 꼭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爾時,世尊告諸比丘:“我於此衆,初不見一法,不可降伏,難得時宜,受諸苦報。所謂心是。諸比丘,此心不可降伏,難得時宜,受諸苦報。是故諸比丘,當分別心,當思惟心,善念諸善本。如是諸比丘,當作是學。”

그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 6 ]
이와 같이 들었다.
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 중생들에게서 애초부터 한 법처럼 항복 받기 쉽고 때를 맞추기도 쉬우며 온갖 좋은 과보를 받게 하는 것을 보질 못했다. 그 법은 곧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비구들아, 마땅히 마음의 선함을 잘 분별하고 또 모든 선(善)의 근본을 잘 기억하라. 모든 비구들아, 꼭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爾時世尊告諸比丘:“我於此衆,初不見一法,易降伏者,易得時宜,受諸善報。所謂心是。諸比丘,當分別心,善念諸善本。如是諸比丘,當作是學。”

그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 7 ]
이와 같이 들었다.
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대중들 중에서 어느 누가 어떤 생각을 하더라도 나는 그 생각을 다 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다시 어떤 사람이 ‘나는 음식 때문에 대중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혹 다른 어느 때에 이 사람이 재물에 물들어서 집착하는 마음을 내어 곧 대중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 까닭은 재물에 물들어 집착하는 것은 매우 버리기 어려워 사람들로 하여금 세 갈래 나쁜 세상에 떨어지게 하고 결국에는 함이 없는 곳[無爲處:涅槃]에 이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비구들아, 이미 이런 마음[此心:재물에 집착하는 마음]이 생겼거든 마땅히 곧 버려야 할 것이요, 가령 아직 생기지 않았거든 다시는 재물에 물들어 집착하는 그런 마음이 잃어나지 않게 해야 하느니라. 모든 비구들아, 꼭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爾時,世尊告諸比丘:“於此衆中,若有一人而作是念:我悉知之。然後此人不以飮食在大衆中而虛妄語。我或復於異時,觀見此人,生染著心,念於財物,便於大衆中,而作妄語。所以然者,諸比丘,財物染著甚爲難捨,令人墜墮三惡道中,不得至無爲之處。是故諸比丘,已生此心,便當捨離;設未生者,勿復興心染著財物。如是諸比丘,當作是學。”

그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 8 ]
이와 같이 들었다.
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대중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생각하기를 ‘설령 죽는 한이 있더라도 대중 가운데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으리라’라고 했는데, 뒷날 그 사람이 재물에 물들어 집착하더니 결국 대중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 까닭은 재물에 물들어 집착하는 것은 매우 버리기 어려워 사람들로 하여금 세 갈래 나쁜 세상에 떨어지게 하고 결국에는 함이 없는 곳에 이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비구들아, 이미 이런 마음이 생겼거든 마땅히 곧 버려야 할 것이요, 가령 아직 생기지 않았거든 다시는 재물에 물들어 집착하는 그런 마음이 잃어나지 않게 해야 하느니라. 모든 비구들아, 꼭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爾時,世尊告諸比丘:“於此衆中,而作是念:正使命斷,不於衆中,而作妄語。我或復於異時,觀見此人,生染著心,念於財物,便於大衆中,而作妄語。所以然者,諸比丘,財物染著,甚爲難捨,令人墮三惡道中,不得至無爲之處。是故諸比丘,已生此心,便當捨離;若未生者,勿復興心,染著財物。如是諸比丘,當作是學。”

그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 9 ]
이와 같이 들었다.
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王舍城) 가란타죽원(迦蘭陀竹園)에서 대비구(大比丘)들 5백 명과 함께 계셨다.
一時,佛在羅閱城迦蘭陁竹園所,與大比丘衆,五百人俱。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가? 비구들아, 혹 어느 누구라도 제바달두(提婆達兜:提婆達多)에게서 깨끗한 법을 보았느냐? 그렇다. 저 제바달두는 그가 지은 악(惡)이 너무도 무거워 겁(劫)이 지나도록 죄를 받아도 치료할 수가 없으리라. 그에게서는 내 법 가운데에서 칭송할만한 털끝만큼의 선(善)도 보지 못하였다. 그런 까닭에 나는 지금 제바달두의 온갖 죄의 근원을 치료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를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깊은 뒷간에 떨어져 온 몸에 더러운 것이 묻어 깨끗한 곳이라고는 단 한 군데도 없을 때, 어느 누가 와서 그를 건져내어 깨끗한 곳에 옮겨주기 위해 뒷간 곁이나 그 사람의 몸을 살펴보았다. 혹 깨끗한 곳이 있으면 손으로 잡아 건져내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을 아무리 구석구석 살펴보아도 손으로 잡을 만한 깨끗한 곳이 없어 그냥 버려두고 떠나가는 경우와 같다.
그와 같아서 모든 비구들아, 나는 저 어리석은 제바달두에게서는 털끝 만한 법도 이렇다 할 곳을 보지 못했다. 그는 겁이 지나도록 죄를 받아도 다 치료될 수가 없으리라. 왜냐하면 저 어리석은 제바달두는 오로지 이양(利養)에만 집착하여 5역죄(逆罪)1)를 지었으므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친 뒤에는 나쁜 곳에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모든 비구들아, 이양에 대한 집착은 너무도 무거운 것이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안온한 곳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모든 비구들아, 이양에 대해 집착하는 마음이 이미 생겼거든 곧 버리고, 아직 생기지 않았으면 다시는 그런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 하라. 모든 비구들아, 꼭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爾時,世尊告諸比丘:“云何諸比丘,頗有見提婆達兜淸白之法乎?然復提婆達兜爲惡深重,受罪經劫,不可療治。於我法中,不見毫釐之善可稱記者。以是之故,我今說提婆達兜諸罪之原首,不可療治。猶如有人而墮深廁,形體沒溺,無有一淨處。有人欲來濟拔其命,安置淨處,遍觀廁側及彼人身頗有淨處:吾欲手捉拔濟出之。彼人熟視無一淨處而可捉者,便捨而去。如是諸比丘,我觀提婆達兜愚癡之人,不見毫釐之法,而可記者,受罪經劫不可療治。所以然者,提婆達兜愚癡,專意偏著利養,作五逆罪,已身壞命終,生惡趣中。如是諸比丘,利養深重,令人不得至安隱之處。是故諸比丘,以生利養心,便當捨離,若未生者,勿興染心。如是諸比丘,當作是學。”

그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 10 ]
이와 같이 들었다.
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 가란다죽원에서 대비구들 5백 명과 함께 계셨다.
一時,佛在羅閱城迦蘭陁竹園所,與大比丘衆,五百人俱。

그때 어떤 비구가 여래께서 ‘조달(調達:提婆達多)은 한 겁 동안 죄를 받아도 다 치료되지 못하리라’고 수기(授記)하셨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 그 비구는 곧 존자 아난(阿難)의 처소를 찾아가서 서로 문안인사를 나누고 한쪽에 앉았다.
그때 그 비구가 아난에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아난이여, 여래께서는 제바달두가 지은 업(業)의 근원(根原)을 죄다 보신 뒤에 ‘한 겁 동안 죄를 받아도 다 치료되지 못하리라’고 수기(授記)를 하셨습니까? 아니면, 혹 다른 이유가 있어 그렇게 수기를 하셨습니까?”
爾時,有一比丘聞如來記別調達受罪一劫不可療治。時,彼比丘便至尊者阿難所,共相問訊已,在一面坐。爾時,彼比丘問阿難曰:“云何阿難,如來盡觀提婆達兜原本已,然後記別受罪一劫不可療治乎?頗有所由可得而記耶?”

그러자 아난이 말하였다.
“여래께서는 절대로 함부로 말씀하시지 않으신다. 행동이나 말씀이 사실과 조금도 다름이 없으시다. 여래께서는 진실로 ‘제바달두는 그 죄가 너무도 무거워 한 겁을 지내도 다 치료되지 못하리라’고 수기를 하신 것이다.”
時,阿難告曰:“如來所說,終不虛設。身口所行而無有異。如來眞實記提婆達兜別受罪深重,當經一劫,不可療治。”

그때 존자 아난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세존의 발에 예를 올리고 한쪽에 머물러 있었다.
그때 아난이 세존께 아뢰었다.
“어떤 비구가 저의 처소를 찾아와서 말하기를 ‘어떻습니까? 아난이여, 여래께서는 제바달두가 지은 업의 근원을 죄다 보신 뒤에 ‘한 겁 동안 죄를 받아도 다 치료되지 못하리라’고 수기를 하셨습니까? 아니면, 혹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수기를 하셨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그냥 헤어졌습니다.”
爾時,尊者阿難卽從坐起,至世尊所頭面禮足在一面住爾時阿難白世尊曰:“有一比丘來至我所,而作是說:云何阿難,如來盡觀提婆達兜原本已,然後記別受罪一劫不可療治乎?頗有因緣可得記別耶?作是語已,各自捨去。”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마도 그 비구는 늦게 출가하여 우리 법에서 도(道)를 배운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여래는 절대로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어떻게 그 말에 의심이 있을 수 있겠느냐?”
世尊告曰:“彼比丘者,必晩暮學,出家未久,方來至我法中耳。如來所說,終不虛妄。云何於中復起猶豫?”

그때 세존께서 연이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그 비구에게 가서 ‘여래께서 너를 부르신다’ 하고 전하여라.”
爾時,世尊告阿難曰:“汝往至彼,語比丘言:如來呼卿。”

아난이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때 아난이 세존의 분부를 받고 곧 그 비구가 머무는 곳으로 가서 그 비구에게 말하였다.
“여래께서 그대를 부르신다.”
그 비구가 대답하였다.
“알았습니다. 존자여.”
그때 그 비구는 곧 의복을 단정하게 갖추어 입고 아난과 함께 세존의 처소에 나아가 세존의 발에 예를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阿難對曰:“如是,世尊。”是時,阿難受世尊教,便往至彼比丘所,到已,語彼比丘曰:“如來呼卿。”彼比丘對曰:“如是,尊者。”爾時,彼比丘便嚴衣服,共阿難,至世尊所,到已,禮世尊足,在一面坐。

그러자 세존께서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아, 너는 왜 여래의 말을 믿지 않느냐? 여래의 가르침에는 조금도 거짓이 없다. 너는 이제 여래에게서 거짓말을 찾아보려고 하는구나.”
爾時,世尊告彼比丘:“云何愚人,汝不信如來所說乎?如來所教無有虛妄,汝今乃欲求如來虛妄。”

그러자 그 비구가 세존께 아뢰었다.
“제바달두 비구는 큰 신통력이 있고 대단히 위엄스러운 세력이 있습니다. 어찌하여 세존께서는 ‘그는 한 겁 동안 무거운 죄를 받을 것이다’라고 그렇게 수기를 하셨습니까?”
時,彼比丘白世尊曰:“提婆達兜比丘者,有大神力,有大威勢,云何世尊記彼一劫受罪重耶?”

세존께서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입을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오랜 세월 동안 한량없는 괴로움을 받게 될 것이다.”
佛告比丘曰:“護汝口語,勿於長夜受苦無量。”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신(神)을 놀려 세속에 통하면2)
끝끝내 해탈이 있을 수 없고
열반의 도[滅盡跡]를 닦지 않다가
다시 지옥에 떨어지리라.
爾時,世尊便說此偈:
遊禪世俗通,
至竟無解脫,
不造滅盡迹,
復還墮地獄。


“만일 내가 제바달두의 몸에서 털끝 만한 착한 법이라도 보았다면, 나는 끝내 ‘제바달두는 한 겁 동안 죄를 받아도 다 치료될 수 없으리라’고 그렇게 수기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사람아, 나는 저 제바달두에게서 털끝 만한 선행(善行)도 찾아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저 제바달두는 한 겁 동안 죄를 받아도 다 치료될 수 없으리라’고 수기를 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제바달두는 어리석어서 이양(利養)에만 탐착(貪着)하는데, 그는 그렇게 탐착하는 마음을 내어 5역죄(逆罪)를 지었으므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마침내 지옥에 들어갈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이양을 구하려는 마음이 중(重)하면 사람의 선(善)한 근본을 무너뜨려 사람들로 하여금 안온한 곳에 이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모든 비구들아, 가령 이양을 구하려는 마음이 일어나거든 곧 없애기를 힘쓰고,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라. 모든 비구들아, 꼭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若使我當見提婆達兜身有毫釐之善法者,我終不記彼提婆達兜受罪一劫不可療治。是故愚人,我不見提婆達兜有毫釐之善法以是故記彼提婆達兜受罪一劫不可療治。所以然者,提婆達兜愚癡,貪著利養,起染著心,作五逆惡,身壞命終,入地獄中。所以然者,利養心重,敗人善本,令人不到安隱之處。是故諸比丘,設有利養心起,便當求滅,若不有心,勿興想著。如是諸比丘,當作是學。”

그때 그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여미고 세존의 발에 예를 올리고 세존께 아뢰었다.
“저는 지금 후회하고 있습니다. 원컨대 용서하여 주십시오. 어리석기 때문에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여래께서는 절대로 두 갈래의 말씀은 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제가 어리석어 의심을 내었습니다. 부디 바라옵건대 세존께서는 저의 참회(懺悔)를 받아들여 과거를 고치고 미래를 닦게 하소서.”
이렇게 두 번 세 번 간청하였다.
爾時,彼比丘從坐起,整衣服,禮世尊足,白世尊曰:“今自悔過。唯願垂恕。愚癡所致,造不善行。如來所說無有二言,然我愚癡,起猶豫想。唯願世尊,受我悔過,改往修來。”乃至再三。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비구야. 네가 진정으로 참회하고 있구나. 너의 잘못을 용서하리라. 다시는 여래에 대해 의심을 내지 말라. 지금 너의 참회를 받아들이나니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
이렇게 세 번 네 번 말씀하셨다.
世尊告曰:“善哉!比丘,悔汝所念。恕汝不及。莫於如來興猶豫想。今受汝悔過,後更莫作。”乃至三、四。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설하셨다.

비록 중한 죄 지었다 하더라도
뉘우치고 다시 범하지 않으면
그는 계율을 잘 지키는 이라서
그 죄의 근원(根原)이 뽑히리라.
爾時,世尊便說此偈:
設有作重罪,
悔過更不犯,
此人應禁戒,
拔其罪根原。


그때 그 비구와 사부대중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네 가지 아나함과
두 가지 마음과 두 가지 음식과
제바달다에 대한 두 가지 경을 설하셨으니
지혜로운 이는 꼭 깨달아 알아야 한다.
爾時彼比丘及四部衆聞佛所說,歡喜奉行。
四種阿那含,
二心及二食,
婆達二契經,
智者當覺知。


12. 일입도품(壹入道品)
增壹阿含經、壹入道品第十二


[ 1 ]
이와 같이 들었다.
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일입(一入)의 도(道)3)가 있어서 중생들의 행(行)을 깨끗이 하고 시름과 근심을 제거하여 없애어, 온갖 번뇌가 없는 큰 지혜를 얻어 니원(泥洹:涅槃)의 과(果)를 성취하게 한다. 그것은 곧 5개(蓋)4)를 없애고 4의지(意止)5)를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일입(一入)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마음을 전일(專一)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일입이라고 말한다. 어떤 것을 도(道)라고 하는가? 이른바 현성의 8품도(品道)이니, 첫째는 바른 소견[正見]이요, 둘째는 바른 다스림[正治]이며, 셋째는 바른 행위[正業]요, 넷째는 바른 생활[正命]이며, 다섯째는 바른 방편[正方便]이요, 여섯째는 바른 말[正語]이며, 일곱째는 바른 생각[正念]이요, 여덟째는 바른 선정[正定]이다. 이것을 일러 일입도(一入道)라고 말하느니라.
爾時,世尊告諸比丘:“有一入道淨衆生行,除去愁憂,無有諸惱,得大智慧,成泥洹證。所謂當滅五蓋,思惟四意止。云何名爲一入?所謂專一心。是謂一入。云何爲道?所謂賢聖八品道:一名正見,二名正治,三名正業,四名正命,五名正方便,六名正語,七名正念,八名正定。是謂名道。是謂一入道。

5개(蓋)를 없애야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탐욕의 덮개[貪欲蓋]ㆍ성냄의 덮개[瞋恚蓋]ㆍ들뜸의 덮개[掉悔蓋]ㆍ잠의 덮개[睡眠蓋]ㆍ의심의 덮개[疑蓋]이니, 이 5개를 없애야 한다.
云何當滅五蓋所謂貪欲蓋瞋恚蓋、調戲蓋、眠睡蓋、疑蓋,是謂當滅五蓋。

4의지를 사유한다는 것은 하는가? 비구가 안으로 제 몸을 관하여 나쁜 생각을 제거해버려서 근심이 없게 하고, 밖으로 제 몸을 관하여 나쁜 생각을 제거해 없애서 근심을 없게 하며, 안팎으로 제 몸을 관하여 나쁜 생각을 제거해버려서 근심을 없애야 한다.
안으로 느낌[痛:受]을 관하여 스스로 즐거워하고, 밖으로 느낌을 관하고 안팎으로 느낌을 관해야 한다. 안으로 마음을 관하여 스스로 즐거워하고 밖으로 마음을 관하고 안팎으로 마음을 관해야 한다. 안으로 법(法)을 관하고 밖으로 법을 관하며 안팎으로 법을 관하여 스스로 즐거워해야 한다.
云何思惟四意止?於是比丘內自觀身,除去惡念,無有愁憂;外自觀身,除去惡念,無有愁憂;內外觀身,除去惡念,無有愁憂。內觀痛痛,而自娛樂,外觀痛痛,內外觀痛痛。內觀心而自娛樂,外觀心,內外觀心。內觀法,外觀法,內外觀法,而自娛樂。

어떤 것이 비구가 안으로 몸을 관하여 스스로 좋아하는 것인가? 비구가 그 몸을 관찰하되 그 성행(性行)을 따라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발끝에서 머리 꼭대기까지 그 몸은 모두 더러운 것이라서 탐낼 만한 것이 못된다고 관찰하고, 또 그 몸을 관찰하되 털ㆍ손톱ㆍ발톱ㆍ이ㆍ가죽ㆍ살ㆍ힘줄ㆍ뼈ㆍ골수ㆍ뇌ㆍ기름덩이ㆍ창자ㆍ밥통ㆍ심장ㆍ간ㆍ지라ㆍ콩팥 따위를 모두 관찰해 알고, 또 똥ㆍ오줌ㆍ생장(生藏)ㆍ숙장(熟藏)6)ㆍ눈물ㆍ침ㆍ콧물ㆍ혈맥ㆍ지방ㆍ쓸개 따위를 다 관찰하여 어느 것 하나도 탐낼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모든 비구들은 그 몸을 관찰하여 스스로 즐거워하면서 나쁜 생각을 버리고 시름과 근심을 없애야 하느니라.
云何比丘內觀身而自娛樂?於是比丘觀此身,隨其性行,從頭至足,從足至頭,觀此身中,皆悉不淨,無有可貪。復觀此身有毛髮、爪齒、皮肉筋骨、髓腦、脂膏、腸胃、心肝、脾腎之屬;皆悉觀知屎尿生熟二藏目淚、唾涕、血脈、肪膽。皆當觀知無可貪者。如是諸比丘,當觀身,自娛樂,除去惡念,無有愁憂。

또 비구는 그 몸을 돌이켜 관찰하되 ‘이 몸에 흙의 요소가 있는가, 물ㆍ불ㆍ바람의 요소가 있는가?’ 하고 이와 같이 그 몸을 관찰해야 한다.
또 비구는 그 몸을 관찰하여 모든 경계에 대하여 분별하여 ‘이 몸에는 4계(界)가 있다’고 알아야 한다. 마치 능숙하게 짐승을 도살하는 사람이나 그 제자가 소를 다룰 때 뼈마디를 갈라 스스로 관찰하기를 ‘이것은 다리이고 이것은 내장이며, 이것은 뼈이고 이것은 머리이다’라고 아는 것처럼, 비구도 그 경계를 분별하여 그 몸을 관찰하되 ‘이 몸에는 흙의 요소와 물ㆍ불ㆍ바람의 요소가 있다’고 그렇게 관찰해야 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그 몸을 관찰하여 스스로 즐거워해야 하느니라.
復次,比丘,還觀此身有地種耶?水、火、風種耶?如是比丘觀此身。復次,比丘,觀此身,分別諸界。此身有四種,猶如巧能屠牛之士若屠牛弟子解牛節解,而自觀見此是腳,此是心,此是節,此是頭。如是彼比丘分別此界,而自觀察此身有地、水、火、風種,如是比丘,觀身而自娛樂。

또 비구는 그 몸을 관찰하되 ‘이 몸에는 온갖 구멍이 있어서 더러운 것이 새어나온다’고 알아야 한다.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대밭이나 갈대밭을 보는 것처럼, 비구도 그와 같이 그 몸을 관찰하되 ‘이 몸에는 여러 개의 구멍이 있어서 온갖 더러운 것이 그 구멍으로 새어나온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復次,比丘,觀此身有諸孔,漏出不淨,猶如彼人觀竹園,若觀葦叢。如是比丘,觀此身有諸孔,漏出諸不淨。

또 비구는 죽은 시체를 관찰하되 ‘죽은 지 하루, 혹은 이틀ㆍ사흘ㆍ나흘ㆍ닷새ㆍ엿새, 혹은 이레가 지나 그 몸이 부어 터지고 냄새가 나는 더러운 것이라’고 관하고 나서는 제 몸도 저 시체와 다름이 없으니 ‘이 내 몸도 저렇게 될 걱정을 면하지 못하리라’고 관찰해야 한다.
또 비구는 시체가 까마귀ㆍ까치ㆍ독수리 따위에게 먹히거나 혹은 호랑이ㆍ이리ㆍ개ㆍ벌레들에게 먹히는 것을 관하고 나서 또 제 몸도 그것과 다름이 없어 ‘내 몸도 저렇게 되는 근심을 면하지 못하리라’고 관찰해야 한다. 이것을 일러 ‘비구가 제 몸을 관찰하여 스스로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復次,比丘!觀死屍,或死一宿,或二宿,或三宿、四宿,或五宿、六宿、七宿,身體胮脹,臭處不淨。復自觀身,與彼無異,吾身不免此患。若復比丘,觀死屍,烏鵲鴟鳥所見噉食,或爲虎狼、狗犬虫獸之屬所見噉食。復自觀身,與彼無異,吾身不離此患。是謂比丘觀身而自娛樂。

또 비구가 시체를 관찰하되 시체의 절반은 뜯어 먹히고 절반은 땅에 흩어져 있어 냄새나고 더러운 것이라고 알고 나서 또 제 몸에 대해서도 그것과 다름이 없어 ‘내 몸도 저런 법을 면하지 못하리라’고 관찰해야 한다. 또 시체를 관찰하되 송장이 살은 다 없어지고 뼈만 남은 채 피가 묻어 있는 것을 관하고는 또 ‘이 몸도 저 시체와 다름이 없다’고 관찰해야 한다. 비구는 이와 같이 그 몸을 관찰해야 한다.
또 비구는 시체의 힘줄이 나무에 걸린 것을 관하고 나서 제 몸도 그것과 다름이 없다고 관찰해야 한다. 비구는 이와 같이 그 몸에 대해 관찰해야 한다.
復次,比丘!觀死屍,或噉,半散落在地,臭處不淨。復自觀身,與彼無異,吾身不離此法。復次,觀死屍,肉已盡,唯有骨,在血所塗染。復以此身,觀彼身,亦無有異。如是比丘!觀此身。復次,比丘!觀死屍,筋纏束薪。復自觀身,與彼無異。如是比丘觀此身。

또 비구는 시체의 뼈가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데 손뼈ㆍ다리뼈가 각기 다른 곳에 있고, 혹은 장딴지 뼈ㆍ허리뼈ㆍ엉덩이뼈ㆍ팔뼈ㆍ어깨뼈ㆍ옆구리 뼈ㆍ등뼈ㆍ이마 뼈ㆍ해골들이 제각기 흩어져 있는 것을 관하고 나서, 또 제 몸도 그것과 다름이 없어 ‘나도 저런 법을 면하지 못할 것이며, 내 몸도 무너져 없어지고 말 것이다’라고 관찰해야 한다. 비구는 이와 같이 그 몸에 대해 관찰하고 스스로 즐거워해야 한다.
復次,比丘!觀死屍,骨節分散,散在異處,或手骨、腳骨各在一處,或膞骨,或腰骨,或尻骨,或臂骨,或肩骨,或脅骨,或脊骨,或項骨,或髑髏。復以此身與彼無異。吾不免此法,吾身亦當壞敗。如是比丘,觀身而自娛樂。

또 비구는 시체가 흰 빛과 흰 구슬 빛처럼 된 것을 관하고 나서, 제 몸도 그것과 다름이 없어 ‘나도 저런 법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관찰해야 한다. 이것을 일러 ‘비구가 스스로 제 몸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復次,比丘!觀死屍,白色,白珂色。復自觀身與彼無異。吾不離此法。是謂比丘自觀身。

또 비구는 시체의 뼈가 시퍼렇게 멍든 것 같아 탐낼 것이 없고 혹은 재나 흙과 그 빛깔이 같아서 분별할 수 없음을 본다. 이와 같이 비구는 그 몸을 관하여 나쁜 생각을 버리고 시름과 근심을 없애야 한다. 이 몸은 무상(無常)한 것이라서 결국에는 흩어지고 마는 법이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안으로 그 몸을 관찰하고 밖으로 그 몸을 관찰하며 안팎으로 그 몸을 관찰하여 아무 것도 없는 것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復次,比丘,若見死屍骨靑瘀想,無可貪者,或與灰土同色,不可分別。如是比丘,自觀身,除去惡念,無有愁憂,此身無常,爲分散法。如是比丘,內自觀身,外觀身,內外觀身,解無所有。

어떻게 하는 것이 비구가 안으로 느낌[痛]을 관하는 것인가? 비구가 즐거움을 느낄 때는 곧 스스로 ‘나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고 깨달아 알고, 괴로움을 느낄 때에는 ‘나는 괴로움을 느끼고 있다’고 스스로 깨달아 알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끼고 있다’고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한다.
먹는 즐거움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먹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고 스스로 깨달아 알고, 먹는 괴로움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먹는 괴로움을 느끼고 있다’고 스스로 깨달아 알며, 먹는 것이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먹는 것이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끼고 있다’고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한다.
먹지 않는 즐거움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먹지 않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고 스스로 깨달아 알고, 먹지 않는 괴로움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먹지 않는 괴로움을 느끼고 있다’고 스스로 깨달아 알며, 먹지 않는 것이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먹지 않는 것이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끼고 있다’고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한다. 비구가 이와 같이 안으로 느낌을 스스로 관찰하는 것이다.
云何比丘內觀痛痛?於是比丘得樂痛時,卽自覺知我得樂痛;得苦痛時,卽自覺知我得苦痛;得不苦不樂痛時,卽自覺知我得不苦不樂痛若得食樂痛時便自覺知我得食樂痛;若得食苦痛時,便自覺知我得食苦痛;若得食不苦不樂痛時,亦自覺知我食不苦不樂痛。若得不食樂痛時便自覺知我得不食樂痛若得不食苦痛時,亦自覺知我不食苦痛;若得不食不苦不樂痛時,亦自覺知我得不食不苦不樂痛如是比丘,內自觀痛。

또 비구는 즐거움을 느낄 때에는 괴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때 ‘나는 즐거움을 느낀다’고 스스로 깨달아 알고, 괴로움을 느낄 때에는 즐거움을 느끼지 않나니 ‘나는 괴로움을 느낀다’고 스스로 깨달아 알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낄 때에는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나니 ‘나는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낀다’고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한다.
그는 나는 습법(習法:集法)에 대하여 스스로 즐거워하고, 또 법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며, 또 법이 사라지게 하는 길을 관찰한다. 혹은 느낌이 현재에 앞에 나타나 있을 때에는 그것을 알 수 있고 볼 수 있으며, 그 근본에 대해 사유하여 의지할 만한 것이 없다고 알아 스스로 즐거워한다. 그래서 세상에 대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거기서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곧 열반을 얻어, 나고 죽음은 이미 다하였고, 범행(梵行)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다 마쳐 다시는 후생에서 몸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이와 같이 비구는 안으로 느낌을 관하여 어지러운 생각을 없애어 근심이 없고, 밖으로 느낌을 관하고 안팎으로 느낌을 관하여 어지러운 생각을 버려 근심이 없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안팎으로 느낌을 관찰해야 하느니라.
復次,若復比丘得樂痛時,爾時不得苦痛,爾時自覺知我受樂痛。若得苦痛時,爾時,不得樂痛,自覺知我受苦痛。若得不苦不樂痛時,爾時,無苦無樂,自覺知我受不苦不樂痛彼習法而自娛樂亦觀盡法復觀習盡之法,或復有痛,而現在前,可知可見,思惟原本,無所依倚,而自娛樂,不起世閒想。於其中,亦不驚怖,以不驚怖,便得泥洹,生死已盡,梵行已立,所作已辦,更不復受,有如眞實知。如是比丘,內自觀痛,除去亂念,無有愁憂,外自觀痛,內外觀痛,除去亂念,無有愁憂。如是比丘,內外觀痛。

어떻게 비구는 마음과 마음의 법을 관찰하여 스스로 즐거워해야 하는가? 비구에게 애욕의 마음[愛欲心]이 있으면 곧 애욕의 마음이 있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하고, 애욕의 마음이 없으면 곧 애욕의 마음이 없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한다. 성내는 마음[瞋恚心]이 있으면 곧 성내는 마음이 있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하고, 성내는 마음이 없으면 성내는 마음이 없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한다. 어리석은 마음[愚癡心]이 있으면 곧 어리석은 마음이 있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하고 어리석은 마음이 없으면 곧 어리석은 마음이 없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한다.
사랑하는 마음[愛念心]이 있으면 곧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곧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한다. 받아들이는 마음[受入心]이 있으면 곧 받아들이는 마음이 있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없으면 곧 받아들이는 마음이 없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한다.
어지러운 마음[亂心]이 있으면 곧 어지러운 마음이 있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하고, 어지러운 마음이 없으면 곧 어지러운 마음이 없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한다.
흩어져서 서로 떨어진 마음[散落心]이 있으면 곧 흩어져서 서로 떨어진 마음이 있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하고, 흩어져서 서로 떨어진 마음이 없으면 곧 흩어져서 서로 떨어진 마음이 없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한다.
云何比丘觀心心法,而自娛樂?於是比丘有愛欲心,便自覺知有愛欲心;無愛欲心,亦自覺知無愛欲心。有瞋恚心,便自覺知有瞋恚心;無瞋恚心,亦自覺知無瞋恚心有愚癡心便自覺知有愚癡心;無愚癡心,便自覺知無愚癡心。有愛念心,便自覺知有愛念心,無愛念心便自覺知無愛念心有受入心,便自覺知有受入心;無受入心,便自覺知無受入心。有亂念心,便自覺知有亂心;無亂心,便自覺知無亂心。有散落心,亦自覺知有散落心;無散落心,便自覺知無散落心。

두루 미치는 마음[普遍心]이 있으면 곧 두루 미치는 마음이 있는 줄을 깨달아 알아야 하고, 두루 미치는 마음이 없으면 곧 두루 미치는 마음이 없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한다.
큰 마음[大心]이 있으면 곧 큰 마음이 있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하고, 큰 마음이 없으면 큰 마음이 없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한다. 한량없는 마음[無量心]이 있으면 곧 한량없는 마음이 있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하고, 한량없는 마음이 없으면 곧 한량없는 마음이 없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한다.
삼매의 마음[三昧心]이 있으면 곧 삼매의 마음이 있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하고 삼매의 마음이 없으면 곧 삼매의 마음이 없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한다.
해탈하지 못한 마음[未解脫心]이면 곧 해탈하지 못한 마음인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하고, 해탈한 마음[解脫心]이면 곧 해탈한 마음인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마음과 마음의 모양에서 그 뜻이 그침을 관찰해야 한다.
有普遍心,便自覺知有普遍心;無普遍心,便自覺知無普遍心。有大心,便自覺知有大心;無大心,便自覺知無大心。有無量心,便自覺知有無量心;無無量心,便自覺知無無量心。有三昧心,便自覺知有三昧心;無三昧心,便自覺知無三昧心。未解脫心,便自覺知未解脫心;已解脫心,便自覺知已解脫心。如是比丘,心相觀意止。

법이 발생하는 것[習法]과 법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고 아울러 법이 사라지게 하는 길을 관찰하며, 법을 사유하는 것을 관하고서 스스로 즐거워해야 한다.
알 수 있고, 볼 수 있으며,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없는 것에 의지할 수는 없다고 깨달아 세상에 대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그런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곧 두려움이 없어지고 두려움이 없어짐으로 남음이 없으며, 이미 남음이 없으므로 곧 열반에 이르러서, 나고 죽음이 이미 다하였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다 마쳐 다시는 후생에서 몸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안으로 마음과 마음에서 그 뜻이 그쳐짐을 관하여 어지러운 생각을 없애 근심이 없고, 밖으로 마음을 관찰하고, 안팎으로 마음과 마음에서 그 뜻의 그쳐짐을 관찰해야 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마음과 마음의 모양에서 그 뜻이 그쳐지는 것을 관찰해야 하느니라.
觀習法,觀盡法,幷觀習盡之法,思惟法觀,而自娛樂。可知,可見,可思惟,不可思惟,無所猗,不起世閒想,已不起想,便無畏怖,已無畏怖,便無餘,已無餘,便涅槃,生死已盡,梵行已立,所作已辦,更不復受有,如實知之。如是比丘,內自觀心心意止,除去亂念,無有憂愁;外觀心,內外觀心心意止。如是比丘,心心相觀意止。

어떻게 비구는 법과 법의 모양에서 그 뜻이 그쳐지는 것을 관찰해야 하는가? 비구가 염각의(念覺意)를 닦되 관(觀)을 의지하고, 욕심 없음[無欲]을 의지하며, 모두 사라짐[滅盡]을 의지하여 온갖 나쁜 법[惡法]을 다 버린다. 법각의(法覺意)를 닦고, 정진각의(精進覺意)를 닦으며, 염각의(念覺意)를 닦고, 의각의(猗覺意)를 닦고, 삼매각의(三昧覺意)를 닦으며, 호각의(護覺意)를 닦되, 관(觀)법을 의지하고 욕심 없음[無欲]을 의지하며 모두 사라져서 다함[滅盡]을 의지하여 모든 나쁜 법을 버린다. 이와 같이 비구는 법과 법의 모양에서 그 뜻이 그쳐짐을 관찰해야 하느니라.
云何比丘法法相觀意止?於是比丘,修念覺意,依觀,依無欲,依滅盡,捨諸惡法;修法覺意,修精進覺意,修念覺意,修猗覺意,修三昧覺意,修護覺意,依觀,依無欲,依滅盡,捨諸惡法。如是比丘,法法相觀意止。

또 비구는 애욕에서 해탈하여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惡不善法]을 버리고, 각(覺:거친 생각)이 있고, 관(觀:미세한 생각)이 있으며, 편안하게 의지할 생각이 있어 첫 번째 선정에 들어가는 것을 스스로 즐거워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법과 법의 모양에서 그 뜻이 그쳐짐을 관찰해야 하느니라.
復次,比丘!於愛欲解脫,除惡不善法,有覺有觀,有猗念樂,於初禪,而自娛樂。如是比丘,法法相觀意止。

또 비구는 각이 있음을 버리고 관이 있음을 버리며 안으로 기쁜 생각을 내어 전일한 마음으로 각도 없고 관도 없음을 이룩하여 마음이 편안하게 의지할 생각이 있어 두 번째 선정에 들어가 즐거워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법과 법의 모양에서 그 뜻이 그쳐짐을 관찰해야 한다.
復次,比丘!捨有覺有觀,內發歡喜,專其一意,成無覺無觀,念猗喜安,遊二禪,而自娛樂。如是比丘,法法相觀意止。

또 비구는 기억[念]을 버리고 보호하기를 닦아서 항상 스스로 몸이 느끼는 것을 깨달아 알고, 여러 성현들이 구하는 바를 즐거워하면, 보호하려는 생각이 청정한 세 번째 선정에 들어간다. 이와 같이 비구는 법과 법의 모양에서 그 뜻이 그쳐짐을 관찰해야 하느니라.
復次,比丘!捨於念,修於護,恒自覺知身覺,樂諸賢聖所求,護念淸淨,行於三禪。如是比丘法法相觀意止。

또 비구는 괴롭고 즐거운 마음을 버려 근심도 없고 기쁨도 없으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어서 보호하려는 생각이 청정한 네 번째 선정을 즐거워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법과 법의 모양에서 그 뜻이 그쳐짐을 관찰해야 하느니라.
그는 발생하는 법[習法]을 수행하고 사라지는 법[盡法]을 수행하며, 아울러 발생하고 사라지는 법[習盡法]을 수행하여 스스로 즐거워하며, 곧 법(法)에 생각이 그치게 되어 현재 세상에서 알 수도 있고 볼 수도 있어 어지러운 생각을 제거해 버리고, 의지하는 데가 없어 세상에 대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미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면 곧 두려움이 없어지고 이미 두려움이 없어지고 나면 나고 죽음이 곧 다하고 범행(梵行)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다 마쳐 다시는 후생에서 몸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비구들아, 일입(一入)의 도에 의하여 중생들은 청정함을 얻고, 근심을 멀리 여의며, 다시는 기뻐하는 생각이 없고, 곧 지혜를 체득하여 열반을 증득한다. 이것이 이른바 5개(蓋)를 없애고 4의지(意止)을 닦는다는 것이니라.”
復次,比丘!捨苦樂心,無復憂喜,無苦無樂,護念淸淨,樂於四禪。如是比丘。法法相觀意止。彼行習法,行盡法,幷行習盡之法,而自娛樂,便得法意止而現在前,可知,可見。除去亂想,無所依猗,不起世閒想,已不起想,便無畏怖,已無畏怖,生死便盡,梵行已立,所作已辦,更不復受有,如實知之。諸比丘,依一入道,衆生得淸淨,遠愁憂,無復喜想,便逮智慧,得涅槃證,所謂滅五蓋,修四意止也。”

그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 2 ]
이와 같이 들었다.
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 가운데서 범행 닦는 이를 미워하고 시기하는 것보다 더 빨리 망하는 법은 보지 못하였다. 그런 까닭에 비구들아, 마땅히 자비와 인욕을 닦되 몸으로 자애를 실천하고 입으로는 자애로운 말을 하며 뜻으로 자애로움을 실천해야 한다. 모든 비구들아, 꼭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爾時,世尊告諸比丘:“我於是中不見一法速磨滅者,憎嫉梵行。是故諸比丘,當修行慈忍,身行慈,口行慈,意行慈。如是諸比丘,當作是學。”

그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 3 ]
이와 같이 들었다.
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세상에 나타날 때에는, 모든 하늘ㆍ사람ㆍ마천(魔天)ㆍ사문(沙門)ㆍ바라문들 중에서 가장 높고 최상이 되는 분으로서 이 세상에 그와 견줄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며, 제일가는 복밭[福田]으로서 섬길 만하고 공경할 만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런 사람인가? 다살아갈(多薩阿竭:如來)ㆍ아라하(阿羅呵)ㆍ등정각(等正覺)을 그런 분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한 사람이 세상에 나타날 때에는 모든 하늘ㆍ사람ㆍ아수륜(阿須倫)ㆍ마(魔)ㆍ마천(魔天)ㆍ사문ㆍ바라문들보다 뛰어나서 가장 높고 최상이 되는 분으로서 이 세상에 그와 견줄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며, 제일가는 복밭으로서 섬길 만하고 공경할 만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비구들아, 항상 여래를 공양하는 것이 제일 잘하는 일이니라. 모든 비구들아, 꼭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爾時,世尊告諸比丘:“若有一人出現世時,諸天、人民、魔及魔天沙門、婆羅門,最尊最上,無與等者,福田第一,可事可敬。云何爲一人?所謂多薩阿竭阿羅呵三耶三佛。是謂一人,出現世時過諸天人民阿須倫魔及魔天、沙門、婆羅門上,最尊最上,無與等者,福田第一,可事可敬。如是諸比丘,常當供養如來。如是諸比丘,當作是學。”

그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 4 ]
이와 같이 들었다.
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병든 사람을 돌보아주는 것은 곧 나 부처를 돌보는 것이요, 병자를 간호하는 것은 곧 나를 간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직접 병자를 간호해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비구들아, 나는 어떤 사람이 하늘ㆍ세간ㆍ사문ㆍ바라문을 보시하는 것 중에 최상이어서 이 보시보다 더 훌륭한 것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그러니 이 보시를 행해야 비로소 참다운 보시가 되어 큰 과보(果報)를 얻고 큰 공덕을 얻어 그 명성이 널리 골고루 퍼지고 감로법(甘露法)의 맛을 얻게 될 것이다. 그 한 분이란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을 말하느니라.
온갖 보시 가운데에서 가장 훌륭한 것은 이 보시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 알고 이 보시를 행하면, 그것은 곧 참다운 보시가 되어 큰 과보와 큰 공덕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이런 인연으로 인하여 이렇게 말한다.
‘병자를 돌보아주는 이는 곧 나를 돌보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렇게 하면 너희들은 언제나 큰 복을 얻을 것이다. 모든 비구들아, 꼭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爾時,世尊告諸比丘:“其有瞻視病者,則爲瞻視我已。有看病者,則爲看我已。所以然者,我今躬欲看視疾病。諸比丘,我不見一人於諸天世閒、沙門、婆羅門施中,最上無過是施。其行是施,爾乃爲施,獲大果報,得大功德,名稱普至,得甘露法味。所謂如來至眞等正覺。知施中最上無過是施,其行是施,爾乃爲施,獲大果報,得大功德。我今因此因緣,而作是說:瞻視病者,則爲瞻視我已,而無有異。汝等長夜獲大福祐。如是諸比丘,當作是學。”

그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 5 ]7)
이와 같이 들었다.
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아련야(阿練若)8)를 찬탄하고 칭송하는 것은 곧 나를 찬탄하고 칭송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아련야행을 찬양하고 칭송하기 때문이다. 아련야를 비방하는 것은 곧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걸식을 찬탄하여 말하는 것은 곧 나를 찬탄하고 칭송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걸식을 찬탄하여 말하기 때문이다. 걸식을 비방하는 것은 곧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홀로 앉아 있는 이를 찬탄하여 말하는 것은 곧 나를 찬탄하여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홀로 앉아 있는 이를 찬양하여 말하기 때문이다. 홀로 앉아 있는 이를 비방하는 것은 곧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한 번 앉아서 계속 수행하다가 하루에 한 끼니를 먹는 이를 찬양하고 칭찬하는 것은 곧 나를 찬양하고 기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한 번 앉아서 계속 수행하다가 하루에 한 끼니를 먹는 이를 찬양하고 칭찬하기 때문이다. 한 번 앉아서 계속 수행하다가 하루에 한 끼니를 먹는 이를 비방하는 것은 곧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나무 밑에 앉아서 수행하는 이를 찬탄하여 말하는 것은 곧 나를 찬탄하여 말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나무 밑에 앉아 수행하는 이를 찬탄하여 말하기 때문이다. 저 나무 밑에 앉아서 수행하는 이를 비방하는 것은 곧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爾時,世尊告諸比丘:“其有嘆譽阿練若者,則爲嘆譽我已。所以然者,我今恒自嘆譽阿練若行。其有誹謗阿練若者,則爲誹謗我已。其有嘆說乞食,則爲嘆譽我已。所以然者,我恒歎說能乞食者。其有謗毀乞食,則爲毀我已。其有嘆說獨坐者,則爲嘆說我已。所以然者,我恒嘆說能獨坐者。其有毀獨坐者,則爲毀我已。其有嘆譽一坐一食者,則爲嘆譽我已。所以然者,我恒嘆譽一坐一食者。其有毀者,則爲毀我已。若有嘆說坐樹下者,則爲嘆說我身無異。所以然者,我恒嘆譽在樹下者。若有毀彼在樹下者,則爲毀我已。

한데 앉아서 수행하는 이를 찬탄하여 말하는 것은 곧 나를 찬탄하여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한데 앉아서 수행하는 이를 찬탄하기 때문이다. 한데 앉아서 수행하는 이를 비방하는 것은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비고 한적한 곳에 사는 이를 찬탄하여 말하는 것은 곧 나를 찬탄하여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비고 한적한 곳에 사는 이를 찬탄하여 말하기 때문이다. 비고 한적한 곳에 사는 이를 비방하는 것은 곧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다섯 가지 누더기 옷[五納衣]을 입은 이를 찬탄하여 말하는 것은 곧 나를 찬탄하여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다섯 가지 누더기 옷을 입은 이를 찬탄하여 말하기 때문이다. 다섯 가지 누더기 옷을 입은 이를 비방하는 것은 곧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其有嘆說露坐者,則爲嘆說我已。所以者何?我恒嘆說露坐者。其有毀辱露坐者,則毀辱我已。其有嘆說空閑處者,則爲嘆說我已。所以者何?我恒嘆說空閑處者其有毀辱空閑處者,則爲毀辱我已。其有嘆說著五納衣者,則爲嘆說我已。所以者何?我恒嘆說著五納衣者其有毀辱著五納衣者,則爲毀辱我已。

세 가지 법의만 지니는 이를 찬탄하여 말하는 것은 곧 나를 칭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세 가지 법의만 지니는 이를 찬탄하여 말하기 때문이다. 세 가지 법의만 지니는 이를 비방하는 것은 곧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무덤 사이에 앉아 수행하는 이를 찬탄하여 말하는 것은 곧 나를 찬탄하여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무덤 사이에 앉아서 수행하는 이를 찬탄하기 때문이다. 무덤 사이에 앉아 수행하는 이를 비방하는 것은 곧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하루 한 끼니만 먹는 이를 찬탄하여 말하는 것은 곧 나를 찬탄하여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하루에 한 끼니만 먹는 이를 찬탄하여 말하기 때문이다. 하루 한 끼니만 먹는 이를 비방하는 것은 곧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점심때만 먹는 이를 찬탄하여 말하는 것은 곧 나를 찬탄하여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점심때만 먹는 이를 찬탄하여 말하기 때문이다. 점심때만 먹는 이를 비방하는 것은 곧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其有嘆說持三衣者,則爲嘆說我已。何以故?我恒嘆說持三衣者。其有毀辱持三衣者,則爲毀辱我已。其有嘆說在塚閒坐者,則爲嘆說我已。何以故?我恒嘆說在塚閒坐者。其有毀辱在塚閒坐者,則爲毀辱我已。其有嘆一食者,則爲嘆說我已。何以故?我恒嘆說一食者。其有毀辱一食者,則爲毀辱我已。其有嘆說日正中食者,則爲嘆說我已。何以故?我恒嘆說正中食者。其有毀辱正中食者,則爲毀辱我已。

온갖 두타행(頭陀行)을 하는 이를 찬탄하여 말하는 것은 곧 나를 찬탄하여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두타행을 수행하는 이를 찬탄하여 말하기 때문이다. 두타행을 수행하는 이를 비방하는 것은 곧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모든 비구들에게 분부하나니 너희들은 마하 가섭(迦葉)처럼 수행하여 빠뜨림이 없게 하라. 그렇게 해야 하는 까닭은 마하 가섭은 이런 모든 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비구들은 항상 마하 가섭처럼 수행해야 한다. 모든 비구들아, 꼭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其有嘆說諸頭陁行者,則爲嘆說我已。所以然者,我恒嘆說諸頭陁行。其有毀辱諸頭陁行者,則爲毀辱我已。我今教諸比丘,當如大迦葉,所行無有漏失者。所以然者,迦葉比丘有此諸行。是故諸比丘所學,常當如大迦葉。如是比丘,當作是學。”

그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 6 ]
이와 같이 들었다.
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열성(羅閱城)의 가란다죽원에서 대비구들 5백 명과 함께 계셨다.
一時,佛在羅閱城迦蘭陁竹園所,與大比丘衆,五百人俱。

그때 마하 가섭은 아련야에 머물고 있으면서 때가 되어 걸식할 적에는 가난한 집과 부자를 가리지 않았으며, 한곳에 한 번 앉으면 끝끝내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나무 밑이나 한데나 비고 한적한 곳에 앉았으며, 다섯 가지 누더기 옷을 입고 세 가지 법의를 지니고 있었으며, 무덤 사이에서 수행을 하였다.
혹은 하루 한 끼니만 먹는데 그것도 점심때에만 먹었으며 두타행을 하는 사람들 중에 나이는 가장 많았다. 이때 존자 마하 가섭은 식사를 마친 뒤에 곧 어떤 나무 밑으로 가서 선정에 들어갔다. 선정에서 다시 일어나 옷을 여미고 세존에게 나아갔다.
爾時,尊者大迦葉住阿練若,到時乞食,不擇貧富,一處一坐,終不移易,樹下露坐,或空閑處,著五納衣,或持三衣,或在塚閒。或時一食,或正中食,或行頭陁,年高長大。爾時,尊者大迦葉食後,便詣一樹下禪定。禪定已,從坐起,整衣服,往至世尊所。

그때 세존께서 멀리서 가섭이 오는 것을 보고 곧 말씀하셨다.
“잘 왔다, 가섭아.”
是時,世尊遙見迦葉來。世尊告曰:“善來,迦葉。”

가섭은 세존에게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를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時,迦葉便至世尊所,頭面禮足,在一面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가섭아, 그대는 나이도 많고 노쇠하여 기력이 없을 것이다. 그대는 지금부터 걸식과 온갖 두타행을 중단하고 또 여러 장자의 공양과 그들이 주는 옷을 받도록 하라.”
世尊告曰:“迦葉,汝今年高長大,志衰朽弊。汝今可捨乞食乃至諸頭陁行,亦可受諸長者請,幷受衣裳。”

가섭이 대답하였다.
“저는 여래의 분부를 따르지 못하겠습니다. 왜 그런가 하오면, 만일 여래께서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無上正眞道]를 이루지 못하셨을 적에 저는 벽지불(辟支佛)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벽지불은 아련야행을 행하면서 때가 되어 걸식할 적에는 가난한 집과 부자를 가리지 않고 한곳에 한 번 앉으면 끝끝내 옮기지 않았으며, 나무 밑이나 한데나 혹은 비고 한적한 곳에 앉았으며, 다섯 가지 누더기 옷을 입고 세 가지 법의를 지녔으며, 무덤 사이에서 수행하였고 끼니는 하루에 한 끼니만 먹되 점심때에만 먹었으며, 또 두타행을 행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와서 본래 익힌 것을 버리고 다시 다른 행을 배울 수가 없사옵니다.”
迦葉對曰:“我今不從如來教。所以然者,若當如來不成無上正眞道者,我則成辟支佛。然彼辟支佛盡行阿練若,到時乞食,不擇貧富,一處一坐,終不移易,樹下露坐,或空閑處,著五納衣,或持三衣,或在塚閒,或時一食,或正中食,或行頭陁。如今不敢捨本所習,更學餘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구나, 가섭아. 그대는 중생들에게 많은 이익을 주어 한량없이 많은 사람들을 건지고, 널리 일체의 천상(天上)과 인간(人間)을 제도할 것이다. 왜냐하면, 또 가섭아, 그 두타행이 세상에 남아 있으면 내 법도 또한 이 세상에 오래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법이 이 세상에 남아 있으면 하늘 세계[天道]는 더욱 늘어나고 세 갈래 나쁜 세계는 점점 줄어들 것이며, 또 수다원(須陀洹)ㆍ사다함(斯陀含)ㆍ아나함(阿那含)의 3승도(乘道)를 성취하여 모두 세상에 존재하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비구들은 수행을 하되 가섭이 익혔던 것처럼 해야 하느니라. 모든 비구들아, 꼭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世尊告曰:“善哉,善哉!迦葉多所饒益,度人無量廣及一切天人得度所以然者,若迦葉此頭陁行在世者。我法亦當久在於世,設法在世,益增天道,三惡道便減,亦成須陁洹、斯陁含、阿那含、三乘之道,皆存於世。諸比丘所學,皆當如迦葉所習。如是諸比丘,當作是學。

그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 7 ]
이와 같이 들었다.
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양(利養)은 너무도 무거운 것이라서 사람들로 하여금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無上正眞道]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 왜냐하면 모든 비구들아, 저 제바달두(提婆達兜:提婆達多)는 사람됨이 어리석어서 저 왕자 바라류지(婆羅留支)9)가 공양한 5백 개 가마솥의 밥을 받아 공양하였다. 만일 그가 공양하지 않았더라면 어리석은 제바달두는 끝내 그런 악을 짓지 않았을 것이다. 바라류지 왕자가 날마다 5백 개의 가마솥에 밥을 지어 가지고 가서 공양하였기 때문에 제바달두는 5역죄(逆罪)를 지었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큰 아비지옥에 떨어진 것이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양은 매우 무거운 것이라서 사람들로 하여금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만약 이양을 탐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거든 다시는 생기지 못하게 하고, 이미 생겼거든 곧바로 없애야 할 것이니라. 모든 비구들아, 너희들은 꼭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爾時,世尊告諸比丘:“利養甚重,令人不得至無上正眞之道。所以然者,諸比丘,彼提婆達兜愚人取彼王子婆羅留支五百釜食供養。設彼不與者,提婆達兜愚人終不作此惡。以婆羅留支王子五百釜食日來供養。是故提婆達兜起五逆惡,身壞命終,生摩訶阿鼻地獄中。以此方便,當知利養甚重,令人不得至無上正眞之道。若未生利養心,不應生,已生,當滅之。如是諸比丘,當作是學。”

그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 8 ]
이와 같이 들었다.
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에 있는 기사굴산에서 대비구들 5백 명과 함께 계셨다.
一時,佛在羅閱城耆闍崛山中,與大比丘衆五百人俱。

그 무렵에 제바달두가 승가 대중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여래의 발을 다치게 하고는 아사세를 시켜 그 부왕(父王)을 죽이게 하고 다시 아라한인 비구니를 죽이고는 대중들 앞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악(惡)이 어디에 있으며 악은 어디에서 생기는가? 누가 그 악을 지어 그 과보를 받는가? 나는 어떤 악을 지어도 그 과보를 받지 않는다.”
爾時,提婆達兜壞亂衆僧,壞如來足,教阿闍世取父王殺,復殺羅漢比丘尼,在大衆中,而作是說:“何處有惡?惡從何生?誰作此惡,當受其報?我亦不作此惡,而受其報。”

그때 많은 비구들이 라열성(羅閱城)에 들어가서 걸식을 하다가 어리석은 제바달두가 대중들 앞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악이 어디에 있으며 악은 어디에서 생기는가? 누가 그 악을 지어 그 과보를 받는가?”
그때 많은 비구들은 공양을 마친 뒤에 가사와 발우를 챙겨 두고 니사단(尼師壇)을 오른 어깨에 걸치고 세존께서 계시는 곳으로 찾아가서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를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爾時,有衆多比丘入羅閱城乞食,而聞此語,提婆達兜愚人在大衆中而作是說:“何處有惡?惡從何生?誰作此惡而受其報?”爾時,衆多比丘食後,攝取衣鉢,以尼師壇,著右肩上,便往至世尊所,頭面禮足,在一面坐。

그때 많은 대중 비구들이 세존께 아뢰었다.
“저 어리석은 제바달두가 대중들 앞에서 말하기를 ‘어떤 악을 지어도 재앙이 없고, 어떤 복을 지어도 보답이 없다. 선과 악의 과보를 받는 경우는 전혀 없다’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爾時,衆多比丘白世尊曰:“提婆達兜愚人在大衆中,而作是說:云何爲惡?無殃、作福,無報,無有受善惡之報。”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악도 있고 죄도 있으며 선이나 악을 행했을 경우에는 틀림없이 그 과보가 있다. 만일 저 어리석은 제바달두가 선과 악의 갚음이 있는 줄을 안다면 몸이 바짝바짝 타고 초조해 하며, 근심스럽고 피가 끓어올라 얼굴에 있는 온갖 구멍으로 흘러나올 것이다. 저 제바달두는 선과 악의 갚음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대중들 앞에서 ‘선과 악의 갚음이 없다. 악을 행해도 재앙이 없고 선을 행하여도 복이 없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니라.”
爾時,世尊告諸比丘:“有惡,有罪,善惡之行皆有報應。若彼提婆達兜愚人知有善惡報者,便當枯竭,愁憂不樂,沸血便從面孔出。以彼提婆達兜不知善惡之報,是故在大衆中,而作是說:無善惡之報,爲惡無殃作善無福。”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 스스로 지혜로운 체하며
악을 행해도 복이 있다 하네.
그러나 나는 지금 미리 아나니
선과 악에는 틀림없이 그 갚음 있다네.
爾時,世尊便說此偈:
愚者審自明,
爲惡爲有福,
我今豫了知,
善惡之報應。


“이와 같나니 모든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악은 멀리 여의고 복 짓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모든 비구들아, 꼭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如是諸比丘,當遠離惡,爲福莫惓。諸比丘,當作是學。”

그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 9 ]
이와 같이 들었다.
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남에게서 이양을 받는다는 것은 매우 중(重)하고 쉽지 않은 일이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함이 없는 곳[無爲處:涅槃]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 왜냐하면, 이양의 갚음은 사람의 가죽을 들어가 끊고, 가죽을 끊고 나면 살을 끊으며, 살을 끊고 나면 뼈를 끊고, 뼈를 끊고 나면 골수를 끊기 때문이니라. 모든 비구들아, 이러한 일로써 이양이란 매우 무거운 줄을 알아야 한다. 만약 이양을 탐내는 마음이 아직 생기지 않았거든 다시는 생기지 못하게 하고 이미 생겼거든 바로 없애야 한다. 모든 비구들아, 너희들은 꼭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爾時,世尊告諸比丘:“受人利養,甚重不易,令人不得至無爲之處。所以然者,利養之報斷入人皮,以斷皮,便斷肉;以斷肉,便斷骨;以斷骨,便徹髓。諸比丘,當以此方便,知利養甚重。若未生利養心,便不生;已生,求令滅之。如是諸比丘,當作是學。”

그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 10 ]
이와 같이 들었다.
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남에게서 이양을 받는다는 것은 매우 중하고 쉽지 않은 일이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함이 없는 곳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 왜냐하면, 만일 저 사리라(師利羅) 비구가 이양을 탐내지 않았더라면 저렇게 한량없는 살생을 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지옥에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爾時,世尊告諸比丘:“受人利養,甚爲不易,令人不得至無爲之處。所以然者,若彼師利羅比丘不貪利養者,不作爾許無量殺生,身壞命終,生地獄中。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설하셨다.

남에게서 무거운 이양을 받으면
사람의 맑고 깨끗한 행 무너지나니
그러므로 마땅히 그 마음 제어하고
그 맛을 탐하여 집착하지 말지니라.
爾時,世尊便說此偈:
受人利養重,
壞人淸白行,
是故當制心,
莫貪著於味。


저 사리라 비구가 선정을 닦아
제석천궁에 태어났지만
그 신통력이 갑자기 퇴보하여
백정 노릇을 하는 처지로 타락하였다.
師利以得定,
乃至天帝宮,
便於神通退,
墮於屠殺中。


“모든 비구들아, 이러한 일로 볼 때에 남에게서 이양을 받는 것은 그리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나니 모든 비구들은 마땅히 다음과 같이 배워야 하리라. 즉 이양을 탐내는 마음이 아직 생기지 않았거든 다시는 생기지 못하게 하고 이미 생겼거든 방편을 써서 바로 없애야 한다. 모든 비구들아, 너희들은 꼭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諸比丘,當以此方便,知受人利養,甚爲不易。如是比丘,當作是學。未生利養心,制令不生;已生此心,求方便令滅。如是諸比丘,當作是學。”

그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增壹阿含經卷第五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또는 5무간업(無間業)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즉 첫째 아비를 죽인 죄, 둘째 어미를 죽인 죄, 셋째 아라한을 죽인 죄, 넷째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죄, 다섯째 부처님의 몸에서 피를 낸 죄를 말한다.
2)
고려대장경 원문에는 이 부분이 유선통세속(遊禪通世俗)으로 되어 있는데 선(禪)자는 글의 의미에 부합하지 않는다. 신수대장경 각주에 의하면 “원(元)ㆍ명(明) 두 본에는 선(禪)자가 신(神)자로 되어 있다”라고 하므로 역자도 이를 따라 번역하였다.
3)
일입의 도[一入道]라고 하는 것은 오직 열반의 도에 들어가기 위하여 한결 같이 행해야 하는 도를 이르는 말이다.
4)
5장(障)이라고도 한다. 개(蓋)는 덮어 가리다[覆蓋]라는 뜻으로서 마음을 덮어 가려서 선(善)한 법을 내지 못하게 하는 다섯 가지 번뇌. 즉 탐욕개(貪欲蓋)ㆍ진에개(瞋恚蓋)ㆍ수면개(睡眠蓋)ㆍ도회개(掉悔蓋)ㆍ의개(疑蓋)를 말한다.
5)
4념처(念處)를 일컫는 것으로서, 즉 신념처(身念處)ㆍ수념처(受念處)ㆍ심념처(心念處)ㆍ법념처(法念處)이다.
6)
처음 음식을 받아들이는 장기를 생장이라 하고 음식물을 받아들여서 소화된 뒤에 그 찌꺼기가 머무는 장기를 숙장이라고 한다.
7)
이 소경은 『잡아함경』 제31권 892번째 소경인 육내처경(六內處經)과 내용이 비슷하다.
8)
팔리어로는 arañña라고 한다. 또는 아란야(阿蘭若)ㆍ아란나(阿蘭拏)라고 쓰기도 하며, 번역하여 최한처(最閑處)라고 한다. 아련야행이란 두타(頭陀)행의 하나로 한가하고 고요한 곳에 머물면서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9)
팔리어로는 Balaruci라고 한다. 번역하여 절지(折指)라고 하며, 마갈타국 빈바사라왕(頻婆娑羅王)의 태자 아사세(阿闍世)의 별명이다. 그는 일찍이 아비를 시해하고 자신이 왕이 되었는데, 나중에는 과거에 지은 악업에 대하여 참회하고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그가 태어났을 때에 관상 보는 사람이 그의 관상을 보고 나중에 틀림없이 아비를 시해할 상이라고 하자 빈바사라왕이 두려운 마음이 생겨 왕자를 데리고 높은 누각에 올라가 그를 밀쳐 떨어뜨렸는데 죽지는 않고 다만 손가락 하나만 부러졌다. 이 왕자는 태어나기 전에 이미 서로 원한이 있었다 하여 그 이름을 아사세(阿闍世:未生怨)라고 하였고 손가락이 부러졌으므로 또 바라유지(婆羅留支:折指)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