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선니경(仙尼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때 외도 출가자 선니(仙尼)가 부처님 계신 곳으로 찾아와 공손히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一時,佛住王舍城迦蘭陁竹園。爾時,有外道出家名仙尼,來詣佛所,恭敬問訊,於一面坐。白佛言:
“세존이시여, 예전 언제가 사문 바라문, 혹은 차라가(遮羅迦),5) 혹은 출가한 이들은 희유강당(希有講堂)에 모여 이런 이치를 이야기하였습니다.
‘부란나가섭(富蘭那迦葉)6)은 대중의 주인이 되어 500제자들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제자들 가운데는 지극히 지혜로운 사람도 있었고 지극히 미련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죽음에 다다랐을 때, 그 스승은 그들이 어디로 가서 태어날지를 예언하지 않았다.
“世尊,先一日時,若沙門、若婆羅門、若遮羅迦、若出家,集於希有講堂。如是義稱,富蘭那迦葉爲大衆主,五百弟子前後圍遶。其中有極聰慧者、有鈍根者,及其命終,悉不記說其所往生處。
또 말가리구사리자(末迦梨瞿舍利子)도 대중의 주인이 되어 500제자들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제자들 가운데는 지혜로운 사람도 있었고 미련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죽음에 다다랐을 때, 그 스승은 그들이 어디로 가서 태어날지를 예언하지 않았다.
復有末迦梨瞿舍利子爲大衆主,五百弟子前後圍遶。其諸弟子有聰慧者、有鈍根者,及其命終,悉不記說所往生處。
이와 같이 선사나비라지자(先闍那毘羅胝子)ㆍ아기다시사흠바라(阿耆多翅舍欽婆羅)ㆍ가라구다가전연(迦羅拘陀迦栴延)ㆍ니건타야제자(尼揵陀若提子) 등도 각각 500제자들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그들 역시 앞의 사람들과 같았다.’
如是先闍那毘羅胝子、阿耆多翅舍欽婆羅、迦羅拘陁迦栴延、尼揵陁若提子等,各與五百弟子前後圍遶,亦如前者。
그런데 사문 구담이시여, 그때 그 사람들 중에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문 구담은 대중의 주인이 되어 그의 여러 제자들 중에 목숨을 마치는 사람이 있으면 곧 아무개는 저기에 태어나고 아무개는 여기에 태어난다고 예언한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먼저 의심이 생겼습니다. 사문 구담께서는 어떻게 그러한 법을 얻으셨습니까?”
沙門瞿曇爾時亦在彼論中言。沙門瞿曇爲大衆主,其諸弟子,有命終者。卽記說言:‘某生彼處、某生此處。’我先生疑:‘云何沙門瞿曇得如此法?’”
부처님께서 선니에게 말씀하셨다.
佛告仙尼:
“너는 의심하지 말라. 미혹이 있으면 그는 곧 의심을 일으키게 된다. 선니야, 마땅히 알라. 세 종류의 스승이 있으니,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어떤 스승은 ‘현세에서 진실로 이것이 나[我]다’라고 하며 제가 아는 대로 말하지만 목숨을 마친 뒤의 일은 능히 알지 못한다. 이런 이를 세간에 출현하는 첫 번째 스승이라 한다. 또 선니야, 어떤 스승은 ‘현세에서 진실로 이것이 나다’라고 보고 ‘목숨을 마친 뒤에도 또한 이것이 나다’라고 보아 제가 아는 대로 말한다. 또 선니야, 어떤 스승은 ‘현세에서 진실로 이것이 나다’라고 보지도 않고 ‘목숨을 마친 뒤에 진실로 이것이 나다’라고 보지도 않는다.
“汝莫生疑。以有惑故,彼則生疑。仙尼,當知有三種師。何等爲三?有一師,見現在世眞實是我,如所知說,而無能知命終後事,是名第一師出於世閒。復次,仙尼,有一師,見現在世眞實是我,命終之後亦見是我,如所知說。復次,先尼,有一師,不見現在世眞實是我,亦復不見命終之後眞實是我。
선니야, ‘현세에서만 진실로 이것이 나다’라고 하며 제가 아는 대로 말하는 첫 번째 스승의 견해를 단견(斷見)이라 한다. ‘현세에서나 후세에서나 진실로 이것이 나다’라고 하며 제가 아는 대로 말하는 두 번째 스승의 견해를 상견(常見)이라 한다. ‘현세에서 진실로 이것이 나다라고 보지 않고, 목숨을 마친 뒤의 나도 또한 보지 않는다’는 것은 곧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의 말이다. 그는 ‘현세에서 애욕을 끊고 탐욕을 떠나 모든 번뇌를 없애면 열반(涅槃)을 얻는다’고 말한다.”
仙尼,其第一師見現在世眞實是我,如所知說者,名曰斷見。彼第二師見今世後世眞實是我,如所知說者,則是常見。彼第三師不見現在世眞實是我,命終之後,亦不見我,是則如來、應、等正覺說,現法愛斷、離欲、滅盡、涅槃。”
선니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仙尼白佛言: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말씀을 듣고 의심만 더욱 더할 뿐입니다.”
“世尊,我聞世尊所說,遂更增疑。”
부처님께서는 선니에게 말씀하셨다.
佛告仙尼:
“마땅히 의심을 더해야 할 것이다. 왜냐 하면 이것은 매우 깊은 이치로써 보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려워 모름지기 깊이 관찰해야만 미묘하게 도달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것은 지혜로운 사람만이 알 수 있고 범부 중생들은 분별해 알 수 없는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중생들은 오랜 세월 동안 잘못 보고, 잘못 참았으며, 잘못 찾고, 잘못 원하였기 때문이니라.”
“正應增疑。所以者何?此甚深處,難見、難知,應須甚深照微妙至到,聰慧所了,凡衆生類,未能辯知。所以者何?衆生長夜,異見、異忍、異求、異欲故。”
선니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仙尼白佛言: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 앞에서 마음에 깨끗한 믿음을 얻었습니다.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저를 위해 설법하시어 저로 하여금 이 자리에서 혜안(慧眼)이 청정하게 하여 주소서.”
“世尊,我於世尊所,心得淨信,唯願世尊爲我說法,令我卽於此座,慧眼淸淨。”
부처님께서는 선니에게 말씀하셨다.
佛告仙尼:
“이제 너를 위해 좋아하는 대로 설명하리라. 선니야, 색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만일 무상하다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今當爲汝隨所樂說。”佛告仙尼:“色是常耶?爲無常耶?”答言:“無常。”世尊復問:“仙尼,若無常者,是苦耶?”答言:“是苦。”
“만일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이 과연 그런 것에 대해 ‘이것은 나다. 나와 다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수ㆍ상ㆍ행ㆍ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世尊復問仙尼:“若無常、苦,是變易法多聞聖弟子寧於中見我、異我、相在不?”答言:“不也,世尊。受、想、行、識,亦復如是。”
세존께서는 다시 물으셨다.
復問:
“어떠냐 선니야, 색이 여래인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수ㆍ상ㆍ행ㆍ식이 여래인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云何?仙尼,色是如來耶?”答言:“不也,世尊。”“受、想、行、識是如來耶?”答言:“不也,世尊。”
다시 물으셨다.
復問:
“선니야, 색을 떠나서 여래가 있는가? 수ㆍ상ㆍ행ㆍ식을 떠나서 여래가 있는가?”
“仙尼,異色有如來耶?異受、想、行、識有如來耶?”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答言:“不也,世尊。”
여래는 다시 물으셨다.
復問:
“선니야, 색 안에 여래가 있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선니야, 여래 안에 색이 있는가? 여래 안에 수ㆍ상ㆍ행ㆍ식이 있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선니야, 색도 아니고 수ㆍ상ㆍ행ㆍ식도 아닌 것이 여래인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仙尼,色中有如來耶?受、想、行、識中有如來耶?”答言:“不也,世尊。”復問:“仙尼,如來中有色耶?如來中有受、想、行、識耶?”答言:“不也,世尊。”復問:“仙尼、非色、非受、想、行、識有如來耶?”答言:“不也,世尊。”
부처님께서는 선니에게 말씀하셨다.
佛告仙尼:
“나의 여러 제자들은 내 말을 듣고도 그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해 교만[慢]을 일으키고 빈틈없는 한결같음[無間等]7)을 얻지 못한다. 빈틈없이 한결같지 못하기 때문에 곧 교만이 끊어지지 않고, 교만이 끊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 음(陰)을 버린 뒤에도 다른 음과 합하여 계속해 태어나느니라. 그러므로 선니야, 나는 이런 제자들에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이러저러한 곳에 태어난다’고 예언한다. 왜냐 하면 그들에게는 남은 교만이 있기 때문이니라.
“我諸弟子聞我所說,不悉解義而起慢無閒等,非無閒等故,慢則不斷;慢不斷故,捨此陰已,與陰相續生。是故仙尼,我則記說,是諸弟子身壞命終,生彼彼處。所以者何?以彼有餘慢故。
그러나 선니야, 내 말을 듣고 그 뜻을 능히 이해하는 나의 여러 제자들은 모든 교만에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얻는다.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얻기 때문에 모든 교만이 끊어지고, 모든 교만이 끊어지기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다시는 계속해 태어나지 않는다. 선니야, 나는 이런 제자들에겐 ‘이 음을 버린 뒤에 이러저러한 곳에 다시 태어난다’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예언할 만한 인연이 없기 때문이니라. 만일 내가 그들에 대해서 예언해야 한다면 나는 ‘그들은 모든 애욕을 끊고 유결(有結)8)을 길이 떠나 바른 뜻으로 해탈하여 고통을 완전히 벗어나리라’고 예언할 것이다. 나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늘 교만의 허물[慢過]과 교만의 발생[慢集]과 교만의 생성[慢生]과 교만의 일어남[慢起]에 대하여 말하였다. 만일 그 교만에 대해서 빈틈없이 한결같이 관찰한다면 갖가지 고통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仙尼,我諸弟子於我所說,能解義者,彼於諸慢得無閒等,得無閒等故,諸慢則斷,諸慢斷故,身壞命終,更不相續。仙尼,如是弟子我不說彼捨此陰已,生彼彼處。所以者何?無因緣可記說故,欲令我記說者,當記說:‘彼斷諸愛欲,永離有結,正意解脫,究竟苦邊。’我從昔來及今現在常說慢過、慢集、慢生、慢起,若於慢無閒等觀,衆苦不生。”
부처님께서 이 법을 말씀하시자, 출가한 선니는 티끌과 때를 멀리 떠나고 법안이 깨끗해졌다. 그때 출가한 선니는 법을 보고 법을 얻어 모든 의혹을 끊었다. 그래서 남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 남의 구제를 받지 않고도 바른 법 안에서 마음에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佛說此法時,仙尼出家遠塵離垢,得法眼淨。爾時,仙尼出家見法、得法,斷諸疑惑,不由他知,不由他度,於正法中,心得無畏。從座起,合掌白佛言:
“세존이시여, 저도 바른 법 안에서 출가하여 범행을 닦을 수 있겠습니까?”
“世尊,我得於正法中出家修梵行不?”
부처님께서 선니에게 말씀하셨다.
佛告仙尼:
“너는 바른 법 안에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얻을 수 있고 비구의 신분이 될 수 있느니라.”
“汝於正法得出家、受具足戒、得比丘分。”
그때 선니는 출가하여 홀로 고요한 곳으로 가서 방일하지 않으며 지냈고, ‘족성자들이 출가하여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걸치고서 믿음으로 집에서 집 아닌 데로 출가한 목적대로, 위없는 범행을 완전히 이루고 현세에서 증득하여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안다’라고 사유하고 아라한이 되었다.
爾時,仙尼得出家已,獨一靜處修不放逸,住如是思惟:“所以族姓子剃除鬚髮,正信非家,出家學道,修行梵行,見法自知得證:‘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得阿羅漢。
선니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聞佛所說,歡喜奉行。
106. 아누라도경(阿㝹羅度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때 아누라도(阿㝹羅度)9) 비구는 기사굴산(耆闍崛山)에 있었다.
이때 많은 외도 출가자들이 아누라도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서로 인사한 뒤 한쪽에 서서 아누라도에게 여쭈었다.
一時,佛住王舍城迦蘭陁竹園。爾時,有比丘名阿㝹羅度,住耆闍崛山。時,有衆多外道出家往詣阿㝹羅度所,共相問訊。共相問訊已,於一面住,白阿㝹羅度言:
“물어 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혹 한가하다면 해석해 주시겠습니까?”
“欲有所問,寧有閑睱,爲解釋不?”
아누라도는 여러 외도들에게 말하였다.
阿㝹羅度語諸外道言:
“마음대로 물으시오. 아는 것은 대답하리다.”
“어떻습니까 존자여, 여래는 죽은 뒤에도 존재합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신 대로라면 그것은 무기(無記)10)입니다.”
“여래는 죽은 뒤에는 존재하지 않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신 대로라면 그것 또한 무기입니다.”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신 대로라면 그것 또한 무기입니다.”
“隨所欲問,知者當答。”諸外道復問:“云何?尊者,如來死後爲有耶?”阿㝹羅度言:“如世尊說,此是無記。”又問:“如來死後爲無耶?”阿㝹羅度言:“如世尊說,此亦無記。”又問:“如來死後有無耶?非有非無耶?”阿㝹羅度言:“如世尊說,此亦無記。”
외도들은 다시 물었다.
復問阿㝹羅度言:
“왜 존자께서는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합니까’라고 물어도 무기(無記)라고 대답하고,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어도 무기라고 대답하며,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 존재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라고 물어도 무기라고 말씀하십니까? 어떻습니까 존자여, 그러면 사문 구담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것입니까?”
“云何?尊者,如來死後有耶?說言無記。死後無耶?說言無記。死後有無耶?非有非無耶?說言無記。云何?尊者,沙門瞿曇爲不知、不見耶?”
아누라도는 대답하였다.
阿㝹羅度言:
“세존께서는 알지 못하는 것도 아니요, 보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世尊非不知、非不見。”
이때 모든 외도들은 아누라도의 말을 불쾌하게 여겨 그를 꾸짖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그때 아누라도는 모든 외도들이 떠난 줄을 알고 부처님이 계신 곳에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한쪽에 서서 모든 외도들이 물었던 것을 부처님께 자세히 말씀드리고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時,諸外道於阿㝹羅度所說,心不喜悅,呵罵已,從座起去。時,阿㝹羅度知諸外道去已,往詣佛所,稽首佛足,於一面住,以諸外道所問,向佛廣說,白佛言:
“세존이시여, 저들은 그렇게 물었고 저는 그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저의 대답은 모든 법의 말씀과 맞는 것입니까? 세존을 비방한 것이 되지는 않았습니까? 법을 따른 것입니까, 법을 어긴 것입니까? 누가 와서 힐난함으로써 그의 꾸짖음을 받지나 않겠습니까?”
“世尊,彼如是問,我如是答,爲順諸法說耶?得無謗世尊耶?爲順法耶?爲違法耶?無令他來難詰,墮呵責處耶?”
부처님께서는 아누라도에게 말씀하셨다.
佛告阿㝹羅度言:
“내 이제 너에게 물으리니 묻는 대로 대답하라. 아누라도야, 색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수ㆍ상ㆍ행ㆍ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我今問汝,隨所問答。阿㝹羅度,色爲常耶?爲無常耶?”答言:“無常。”“受、想、行、識,爲常,無常耶?”答言:“無常,世尊。”
……(이 사이의 자세한 내용은 앞의 염마경에서 자세히 말한 것과 같다.)……
“식이 여래인가?”
“아닙니다.”
如焰摩迦契經廣說,乃至“識是如來耶?”答曰:“不也。”
부처님께서는 아누라도에게 말씀하셨다.
佛告阿㝹羅度: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모든 법의 말을 따랐고 여래를 비방하지 않았으며, 차례를 뛰어넘은 것이 아니다. 여래가 말한 것처럼 법을 따라서 말한 것이다. 따라서 찾아와 힐난하거나 꾸짖을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나는 색(色)을 사실 그대로 알고, 색의 발생[色集]과 색의 소멸[色滅]과 색의 소멸에 이르는 길[色滅道跡]을 사실 그대로 알기 때문이다.
아누라도야, 만일 여래가 한 일을 버리고 ‘아는 것도 없고 본 것도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당치도 않은 말이니라.”
“作如是說者,隨順諸記,不謗如來,非爲越次;如如來說,諸次法說,無有能來難詰訶責者。所以者何?我於色如實知,色集、色滅、色滅道迹如實知。阿㝹羅度,若捨如來所作,無知無見說者,此非等說。”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아누라도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佛說此經已,阿㝹羅度聞佛所說,歡喜奉行。
107. 장자경(長者經)1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바지국(婆祇國) 설수바라산(設首婆羅山)의 녹야원 깊은 숲 속에 계셨다.
그때 120세에 나이가 많아 감각기관이 허물어지고, 파리하고 쇠약하며 병들어 괴로워하던 나구라(那拘羅) 장자라는 이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존과 또 전부터 존경하며 가까이 알았던 비구들이 뵙고싶어 부처님 계신 곳으로 찾아와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一時,佛住婆祇國設首婆羅山鹿野深林中。爾時,有那拘羅長者,百二十歲,年耆根熟,羸劣苦病,而欲覲見世尊及先所宗重知識比丘,來詣佛所,稽首佛足,退坐一面,白佛言:
“세존이시여, 저는 나이 많고 쇠약하며 병들어 괴로워하면서도 스스로 애를 써서 세존과 또 전부터 존경하고 가까이 알던 스님들을 뵈려고 왔습니다. 원하옵건대 저를 위해 설법하시어 오랜 세월 동안 안락하게 하소서.”
“世尊,我年衰老,羸劣苦病,自力勉勵,覲見世尊及先所宗重知識比丘,唯願世尊,爲我說法,令我長夜安樂!”
그때 세존께서는 나구라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爾時,世尊告那拘羅長者:
“훌륭하구나. 장자야, 너는 실로 나이 많아 감각기관이 허물어지고 쇠약하여 병으로 괴로워하면서도 스스로 애를 써서 여래와 또 다른 존경하고 가까이 알던 비구들을 찾아왔구나. 장자야, 마땅히 알라. 괴롭고 병든 몸에서 항상 괴롭지도 병들지도 않는 마음을 닦아야 하느니라.”
“善哉!長者,汝實年老根熟,羸劣苦患,而能自力覲見如來幷餘宗重知識比丘。長者當知,於苦患身,常當修學不苦患身。”
그때 세존께서는 나구라 장자를 위해 가르치고 기쁘게 하신 뒤에 잠자코 계셨다. 나구라 장자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물러갔다.
이때 존자 사리불은 세존에게서 멀지 않은 어떤 나무 밑에 앉아 있었다. 나구라 장자는 존자 사리불이 있는 곳으로 가서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앉았다. 이때 존자 사리불이 장자에게 물었다.
爾時,世尊爲那拘羅長者示、教、照、喜,默然而住。那拘羅長者聞佛所說,歡喜隨喜,禮佛而去。時,尊者舍利弗去世尊不遠,坐一樹下。那拘羅長者往詣尊者舍利弗所,稽首禮足,退坐一面。時,尊者舍利弗問長者言:
“지금 그대는 모든 감각기관에 기쁨이 넘치고 얼굴빛이 선명합니다. 세존에게서 어떤 깊은 법을 들을 수 있었습니까?”
“汝今諸根和悅,貌色鮮明,於世尊所得聞深法耶?”
나구라 장자는 사리불에게 아뢰었다.
那拘羅長者白舍利弗:
“오늘 세존께서는 저를 위해 설법하고 가르쳐 기쁘게 하시고, 감로법(甘露法)으로 제 몸과 마음을 적셔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모든 감각기관에 기쁨이 넘치고 얼굴빛이 선명한 것입니다.”
“세존께서 그대에게 어떤 법을 말씀하시어 가르쳐 기쁘게 하시고, 감로법으로 윤택하게 하셨습니까?”
“今日世尊爲我說法,示、教、照、喜,以甘露法,灌我身心,是故我今諸根和悅,顏貌鮮明。”尊者舍利弗問長者言:“世尊爲汝說何等法,示、教、照、喜,甘露潤澤?”
“저는 아까 세존께서 계시는 곳에 나아가 ‘저는 나이 많고 쇠약하여 병으로 괴로워하면서도 스스로 애를 써서 세존과 또 존경하고 가까이 알던 비구들을 뵈러 왔습니다’고 세존께 아뢰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제게 ‘훌륭하구나. 장자야, 너는 실로 나이 많고 쇠약하여 병으로 괴로워하면서도 능히 스스로의 힘으로 나와 또 전부터 존경하던 비구들을 보러 왔구나. 너는 지금 그 괴롭고 병든 몸에서 항상 괴롭지도 병들지도 않는 마음을 닦아야 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위해 이러한 법을 말씀하시어 가르쳐 기쁘게 하시고 감로(甘露)로써 윤택하게 하셨습니다.”
那拘羅長者白舍利弗:“我向詣世尊所,白世尊言:‘我年衰老,羸劣苦患,自力而來,覲見世尊及所宗重知識比丘。’佛告我言:‘善哉!長者,汝實衰老,羸劣苦患,而能自力詣我及見先所宗重比丘。汝今於此苦患之身,常當修學不苦患身。’世尊爲我說如是法,示、教、照、喜,甘露潤澤。”
존자 사리불은 장자에게 물었다.
尊者舍利弗問長者言:
“그대는 왜 아까 ‘어떤 것이 몸도 병들어 괴롭고 마음도 병들어 괴로운 것이며, 어떤 것이 몸은 병들어 괴롭지만 마음은 병들지도 괴롭지도 않은 것입니까’ 하고 세존께 거듭 여쭈지 않았습니까?”
“汝向何不重問世尊:‘云何苦患身、苦患心?云何苦患身、不苦患心?’”
장자는 대답하였다.
長者答言:
“제가 그 때문에 존자께 찾아왔습니다. 원하옵건대 저를 위해 그 법의 요긴한 점을 간략히 말씀해 주십시오.”
“我以是義故,來詣尊者,唯願爲我略說法要。”
존자 사리불은 장자에게 말하였다.
尊者舍利弗語長者言:
“훌륭합니다. 장자여, 그대는 이제 자세히 들으십시오. 그대를 위해 설명하리다.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색의 발생[色集]과 색의 소멸[色滅]과 색의 재앙[色患]과 색에 맛들임[色味]과 색에서 벗어남[色離]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합니다.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색을 사랑하고 즐거워하여 ‘색은 나다. 이것은 내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거두어 취하다가 만일 그 색이 무너지거나 달라지면 마음도 그 따라 움직여 고통과 번민이 생깁니다. 고통과 번민이 생긴 뒤에는 두려워하고 마음이 막히며, 돌아보고 근심하며 잊지 못합니다. 수ㆍ상ㆍ행ㆍ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나니, 이것을 몸과 마음이 괴롭고 병든 것이라 합니다.
“善哉!長者,汝今諦聽。當爲汝說。愚癡無聞凡夫於色集、色滅、色患、色味、色離不如實知;不如實知故,愛樂於色,言色是我、是我所,而取攝受。彼色若壞、若異,心識隨轉,惱苦生;惱苦生已,恐怖、障閡、顧念、憂苦、結戀。於受、想、行、識亦復如是。是名身心苦患。
어떤 것을 몸은 괴롭고 병들었지만 마음은 괴롭지도 병들지도 않은 것이라 하는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색의 발생과 색의 소멸과 색에 맛들임과 색의 재앙과 색에서 벗어남을 사실 그대로 압니다. 사실 그대로 안 뒤에는 그것을 사랑하거나 즐거워하지 않아 ‘색은 나다. 이것은 내 것이다’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 색이 혹 변하거나 달라지더라도 마음이 그것을 따라 움직여 괴로움과 번민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마음이 따라 움직여 괴로움과 번민이 생기는 일이 없으면, 두려워하거나 마음이 막히거나 돌아보거나 애착하지 않습니다. 수ㆍ상ㆍ행ㆍ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나니, 이것을 몸은 괴롭고 병들었으나 마음은 괴롭지도 병들지도 않은 것이라 합니다.”
云何身苦患、心不苦患?多聞聖弟子於色集、色滅、色味、色患、色離如實知;如實知已,不生愛樂,見色是我,是我所,彼色若變、若異,心不隨轉惱苦生;心不隨轉惱苦生已,得不恐怖、障㝵、顧念、結戀。受、想、行、識亦復如是。是名身苦患、心不苦患。”
존자 사리불이 이 법을 설명하자 나구라 장자는 법안이 깨끗해졌다. 그때 나구라 장자는 법을 보고 법을 얻고 법을 알고 법에 들어가 모든 의심을 벗어나서, 남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 바른 법 안에서 마음에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여민 뒤에 공경히 합장하고 존자 사리불에게 아뢰었다.
尊者舍利弗說是法時,那拘羅長者得法眼淨。爾時,那拘羅長者見法、得法、知法、入法,度諸狐疑,不由於他,於正法中,心得無畏。從座起,整衣服,恭敬合掌,白尊者舍利弗:
“저는 이미 초월하였고 이미 건넜습니다. 저는 이제 부처님과 법과 승가, 삼보에 귀의하여 우바새가 되겠습니다. 저를 인증해 주십시오. 저는 지금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삼보에 귀의하겠습니다.”
“我已超、已度,我今歸依佛、法、僧寶,爲優婆塞,證知我,我今盡壽,歸依三寶。”
그때 나구라 장자는 존자 사리불의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물러갔다.
爾時,那拘羅長者聞尊者舍利弗所說,歡喜隨喜,作禮而去。
108. 서경(西經)1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석씨의 천현(天現)마을에 계셨다.
그때 서방의 많은 비구들은 서방으로 돌아가 안거하려 하면서 세존께서 계시는 곳에 찾아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한쪽에 물러앉았다. 그때 세존께서는 그들을 위해 설법하시어 여러 가지로 가르치고 기쁘게 하셨다. 이때 서방의 많은 비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一時,佛住釋氏天現聚落。爾時,有西方衆多比丘欲還西方安居,詣世尊所,稽首佛足,退坐一面。爾時,世尊爲其說法,示、教、照、喜。種種示、教、照、喜已,時西方衆多比丘從座起,合掌白佛言:
“세존이시여, 저희들 서방의 많은 비구들은 서방으로 돌아가 안거하고자 이제 하직을 고합니다.”
“世尊,我西方衆多比丘欲還西方安居,今請奉辭。”
부처님께서는 모든 서방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佛告西方諸比丘:
“너희들은 사리불에게 하직을 고하였는가?”
“아직 하직을 고하지 않았습니다.”
“사리불은 순수하게 범행을 닦는다. 너희들은 가서 하직을 고하거라. 그는 능히 너희들로 하여금 이치로써 이익되게 하여 오랜 세월 동안 안락하게 하리라.”
“汝辭舍利弗未?”答言:“未辭。”佛告西方諸比丘:“舍利弗淳修梵行,汝當奉辭,能令汝等以義饒益,長夜安樂。”
이때 모든 서방 비구들은 하직하고 물러나 떠나려 하였다.
이때 존자 사리불은 부처님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의 어떤 견고수(堅固樹) 밑에 앉아 있었다. 모든 서방 비구들은 존자 사리불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물러앉아 사리불께 아뢰었다.
時,西方諸比丘辭退欲去。時,尊者舍利弗去佛不遠,坐一堅固樹下,西方諸比丘往詣尊者舍利弗所,稽首禮足,退坐一面,白尊者舍利弗言:
“저희는 서방으로 돌아가 안거하려고 일부러 찾아와 하직을 아룁니다.”
“我等欲還西方安居,故來奉辭。”
사리불은 말하였다.
舍利弗言:
“그대들은 세존께 하직을 아뢰었습니까?”
“汝等辭世尊未?”
“이미 아뢰었습니다.”
“그대들이 서방으로 돌아가면 여러 다른 나라의 여러 사람들이 반드시 그대들에게 질문할 것입니다. 그대들은 세존에게서 들은 좋은 설법을 잘 배우고, 잘 기억하며, 잘 관찰하고, 잘 들어가 능히 그들을 위해 자세히 설명하여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 되지 않게 할 수 있겠습니까? 또 그들이 힐난하고 꾸짖거나 폄하하고 등지는 일이 없게 할 수 있겠습니까?”
答言:“已辭。”舍利弗言:“汝等還西方,處處異國,種種異衆,必當問汝。汝等今於世尊所,聞善說法,當善受、善持、善觀、善入,足能爲彼具足宣說,不毀佛耶?不令彼衆難問、詰責、墮負處耶?”
모든 비구들은 사리불에게 아뢰었다.
彼諸比丘白舍利弗:
“저희들은 법을 듣기 위해 존자께 찾아왔습니다. 원컨대 존자께서는 저희를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我等爲聞法故,來詣尊者,唯願尊者,具爲我說,哀愍故!”
존자 사리불은 모든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尊者舍利弗告諸比丘:
“염부제 사람들은 총명하고 날카롭습니다. 혹 찰리나 바라문, 장자, 사문들은 반드시 그대들에게 ‘너희들의 스승은 어떻게 설법하며 무엇을 너희들에게 가르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그대들은 ‘우리 스승께서는 오직 욕망과 탐욕[欲貪]을 항복 받으라고 말씀하시고 이것으로써 가르치신다’고 대답해야 합니다.
“閻浮提人聰明利根,若剎利、若婆羅門、若長者、若沙門,必當問汝:‘汝彼大師云何說法?以何教教汝?’當答言:‘大師唯說調伏欲貪,以此教教。’
그들은 다시 그대들에게 ‘어떤 법에 대해서 욕망과 탐욕을 항복 받는가’고 물을 것이니, 그대들은 다시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스승께서는 오직 저 색음(色陰)에 대해서 욕망과 탐욕을 항복 받고, 수음(受陰)ㆍ상음(想陰)ㆍ행음(行陰)ㆍ식음(識陰)에 대해서 욕망과 탐욕을 항복 받으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스승께서는 이렇게 설법하신다.’
當復問汝:‘於何法中調伏欲貪?’當復答言:‘大師唯說於彼色陰調伏欲貪,於受、想、行、識陰調伏欲貪,我大師如是說法。’
그들은 다시 ‘욕망과 탐욕에 어떤 재앙이 있기에 너희 스승은 색에 대해서 욕망과 탐욕을 항복 받고, 수음ㆍ상음ㆍ행음ㆍ식음에 대해서 욕망과 탐욕을 항복 받으라고 말하는가’고 물을 것이니, 그대들은 다시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만일 색에 대해서 욕심을 끊지 않고, 탐욕을 끊지 않으며, 사랑을 끊지 않고, 생각을 끊지 않고, 갈망을 끊지 않으면 그 색이 변하거나 혹은 달라질 때에 곧 근심ㆍ슬픔ㆍ괴로움ㆍ번민이 생기리니, 수ㆍ상ㆍ행ㆍ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다. 욕망과 탐욕에서 이러한 재앙을 보았기 때문에 색에 대해서 욕망과 탐욕을 항복 받고,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 욕망과 탐욕을 항복 받으라는 것이다.’
彼當復問:‘欲貪有何過患故,大師說於色調伏欲貪?受、想、行、識調伏欲貪?’汝復應答言:‘若於色欲不斷、貪不斷、愛不斷、念不斷、渴不斷者,彼色若變、若異,則生憂、悲、惱、苦。受、想、行、識亦復如是。見欲貪有如是過故,於色調伏欲貪,於受、想、行、識調伏欲貪。’
그들은 다시 ‘욕망과 탐욕을 끊으면 어떤 행복과 이익이 있다고 보기에 너희 스승은 색에 대해서 욕망과 탐욕을 항복 받고,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 욕망과 탐욕을 항복 받으라고 말하는가’라고 물을 것이니, 그대들은 다시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만일 색에 대해서 욕심을 끊고 탐욕을 끊으며, 생각을 끊고 사랑을 끊고 갈망을 끊으면, 그 색이 변하거나 혹은 달라지더라도 근심ㆍ슬픔ㆍ괴로움ㆍ번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수ㆍ상ㆍ행ㆍ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다.’
彼復當問:‘見斷欲貪,有何福利故,大師說於色調伏欲貪,於受、想、行、識調伏欲貪?’當復答言:‘若於色斷欲、斷貪、斷念、斷愛、斷渴,彼色若變、若異,不起憂、悲、惱、苦。受、想、行、識亦復如是。’
여러분, 만일 좋지 않은 법의 인연을 받고도 현세에서 즐겁게 살면서 괴로워하지도 않고, 걸리지도 않으며, 번민하지도 않고, 애태우지도 않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도 좋은 곳에 태어난다면, 세존께서는 끝내 ‘모든 좋지 않은 법은 끊어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이요, 또한 ‘부처님 법 안에서 모든 범행을 닦으면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고 사람들에게 가르치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諸尊,若受諸不善法因緣故,今得現法樂住,不苦、不㝵、不惱、不熱,身壞命終生於善處者,世尊終不說言:‘當斷諸不善法。亦不教人於佛法中修諸梵行,得盡苦邊。
모든 좋지 않은 법의 인연을 받기 때문에 현세에서 괴롭게 살면서 걸리고, 마음이 타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나쁜 세계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마땅히 모든 좋지 않은 법을 끊고, 부처님 법 안에서 모든 범행을 닦아 평등하게 괴로움을 없애고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以受諸不善法因緣故,今現法苦住,障㝵熱惱,身壞命終,墮惡道中。’是故世尊說言:‘當斷不善法,於佛法中修諸梵行,平等盡苦,究竟苦邊。’
만일 모든 착한 법의 인연을 받고도 현세에서 괴롭게 살면서 걸리고, 마음이 타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도 나쁜 세계에 떨어진다면, 세존께서는 끝내 ‘착한 법을 받아 가지고 부처님 법 안에서 모든 범행을 닦아 평등하게 괴로움을 없애고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착한 법을 받아 가지면 현세에서 즐겁게 살면서 괴로워하지 않고, 걸리지도 않으며, 번민하지도 않고, 애태우지도 않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도 좋은 곳에 태어납니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그것을 찬탄하시면서 사람들에게 ‘모든 착한 법을 받고 부처님 법 안에서 모든 범행을 닦아 평등하게 괴로움을 없애고,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若受諸善法因緣,現法苦住,障㝵熱惱,身壞命終墮惡道中者,世尊終不說受持善法,於佛法中,修諸梵行,平等盡苦,究竟苦邊。受持善法,現法樂住,不苦、不㝵、不惱、不熱,身壞命終,生於善處,是故世尊讚歎、教人受諸善法,於佛法中,修諸梵行,平等盡苦,究竟苦邊。”
존자 사리불이 이 법을 설명하자 여러 서방 비구들은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해탈하였다. 존자 사리불이 이 법을 설명하자, 모든 비구들은 다 함께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물러갔다.
尊者舍利弗說是法時,西方諸比丘不起諸漏,心得解脫。尊者舍利弗說是法時,諸比丘歡喜隨喜,作禮而去。
109. 모단경(毛端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비유하면 둘레가 50유순(由旬)이요 깊이 또한 그와 같은 어떤 못이 있는데 거기에 물이 가득 차 있는 것과 같다. 어떤 장부[士夫]가 털이나 풀이나 혹은 손톱으로 그 물을 뜬다면 모든 비구들아,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냐? 그 장부가 뜬 물이 많으냐, 못 물이 많으냐?”
“譬如池水方五十由旬,深亦如是,其水盈滿。復有士夫,以毛、以草,或以指爪,以渧彼水。諸比丘,於意云何?彼士夫水渧爲多,池水爲多?”
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比丘白佛:
“그 장부가 털이나 풀이나 손톱으로 뜬 물이 적습니다. 적다고 말할 것도 없으니, 그 못 물은 엄청나게 많기가 백천만 배나 되어 견줄 수도 없습니다.”
“그와 같이 모든 비구들아, 진리를 본 사람이 끊은 온갖 괴로움도 그 못 물과 같으니라. 그리고 그것은 미래에도 영원히 다시 나지 않느니라.”
“彼士夫以毛、以草,或以指爪,所渧之水少,少不足言;池水甚多,百千萬倍,不可爲比。”“如是諸比丘,見諦者所斷衆苦,如彼池水,於未來世,永不復生。”
그때 세존께서는 이 법을 말씀하신 뒤 방으로 들어가 좌선하셨다. 이때 존자 사리불이 대중 가운데 앉아 있다가 세존께서 방으로 들어가신 뒤에 모든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爾時,世尊說是法已,入室坐禪。時,尊者舍利弗於衆中坐,世尊入室去後,告諸比丘:
“세존께서 오늘 못에 비유해 하신 말씀은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거룩한 제자가 진리를 완전하게 본다면 빈틈없는 한결같음[無間等]을 그 과보로 얻기 때문입니다. 혹 어떤 범부는 삿된 소견인 신견(身見)ㆍ근본신견(根本身見)ㆍ집신견(集身見)ㆍ생신견(生身見)이 일어나, 이른바 근심하고 기가 죽거나 기뻐하고 아끼며 나[我]를 말하고, 중생을 말하며, 기특한 일과 자랑스러운 일을 말합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삿된 소견을 모두 없애버리고 그 근본을 끊으면 마치 다라 나무를 자른 것과 같아 미래에 다시는 나지 않을 것입니다.
“未曾所聞!世尊今日善說池譬。所以者何?聖弟子具足見諦,得無閒等果,若凡俗邪見、身見根本、身見集、身見生、身見起;謂憂慼隱覆,慶吉保惜,說我、說衆生、說奇特矜擧。如是衆邪,悉皆除滅,斷除根本,如折多羅樹,於未來世更不復生。
모든 비구들이여, 이른바 ‘진리를 본 거룩한 제자들은 위의 여러 가지 사특한 소견을 끊어 미래에 영원히 다시 나지 않게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색은 나다. 나와 다르다. 나는 색 안에 있다. 색은 나 안에 있다’고 보며, ‘수ㆍ상ㆍ행도 마찬가지이며, 식은 나다. 나와 다르다. 나는 식 안에 있다. 식은 나 안에 있다’고 봅니다.
諸比丘,何等爲見諦聖弟子斷上衆邪,於未來世永不復起?愚癡無聞凡夫見色是我、異我我、在色、色在我;見受、想、行、識,是我、異我我在識,識在我。
어떻게 ‘색(色)은 곧 나[我]다’라고 보는가? 일체는 땅이라고 관찰하는 삼매[地一切入處正受]13)를 얻어 관찰한 뒤에는 ‘땅은 곧 나요, 나는 곧 땅이다. 나와 땅은 오직 하나요, 둘이 없으며, 다르지도 않고, 나눌 수도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일체는 물ㆍ불ㆍ바람ㆍ파랑ㆍ노랑ㆍ빨강ㆍ하양이라고 관찰하는 삼매를 얻어 관찰한 뒤에는 ‘행(行)은 곧 나요, 나는 곧 행이다. 그것들은 오직 하나요 둘이 없으며, 다르지도 않고, 나눌 수도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모든 입처(入處)에 대해서 낱낱이 나라고 헤아리나니, 이것이 ‘색은 곧 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云何見色是我?得地一切入處正受,觀已,作是念:‘地卽是我,我卽是地,我及地唯一無二,不異不別。’如是水、火、風、靑、黃、赤、白一切入處正受,觀已,作是念:‘行卽是我,我卽是行,唯一無二,不異不別。’如是於一切入處,一一計我,是名色卽是我。
어떻게 ‘색(色)은 나[我]와 다르다’고 보는가? 만일 그가 수(受)를 곧 나[我]라고 본다면, 그는 수를 곧 나라고 본 뒤에는 색(色)을 곧 내 것[我所]이라고 보며, 혹은 상ㆍ행ㆍ식을 곧 나라고 보고 색(色)을 곧 내 것이라고 봅니다.
어떻게 ‘나 안에 색이 있다’고 보는가? 이른바 수(受)를 곧 나라고 보고는 색(色)은 나 안에 있다고 보며, 혹은 상ㆍ행ㆍ식을 곧 나라고 보고는 색은 나 안에 있다고 봅니다.
어떻게 ‘색 안에 나가 있다’고 보는가? 이른바 수(受)가 곧 나로서 색 안에 머무르고, 색에 들어가 온몸에 두루한다고 보며, 상ㆍ행ㆍ식이 곧 나로서 색 안에 머무르고 온몸에 두루한다고 봅니다. 이것이 ‘색 안에 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云何見色異我?若彼見受是我,見受是我已,見色是我所,或見想、行、識卽是我,見色是我所。云何見我中色?謂見受是我,色在我中;又見想、行、識卽是我,色在我中。云何見色中我?謂見受卽是我,於色中住,入於色,周遍其四體;見想,行,識是我,於色中住,周遍其四體,是名色中我。
어떻게 ‘수(受)는 곧 나[我]다’라고 보는가? 이른바 6수신(受身)이니, 눈으로 부딪쳐 생기는 수와 귀ㆍ코ㆍ혀ㆍ몸ㆍ뜻으로 부딪쳐 생기는 수입니다. 이 6수신에 그 하나 하나가 곧 나요, 나는 곧 수라고 보나니, 이것이 ‘수는 곧 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수는 나와 다르다’고 보는가? 이른바 색을 곧 나라고 보고는 수를 내 것이라고 보며, 상ㆍ행ㆍ식을 곧 나라고 보고는 수를 내 것이라고 보나니, 이것이 ‘수는 나와 다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云何見受卽是我?謂六受身—眼觸生受,耳、鼻、舌、身、意觸生受。此六受身—見是我,我是受,是名受卽是我,云何見受異我?謂見色是我,受是我所;謂想、行、識是我,受是我所,是名受異我。
어떻게 ‘나 안에 수가 있다’고 보는가? 이른바 색을 곧 나라고 보고는 수는 그 안에 있다고 보며, 상ㆍ행ㆍ식을 곧 나라고 보고는 수는 그 안에 있다고 보나니, 이것이 ‘나 안에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수 안에 나가 있다’고 보는가? 이른바 색이 곧 나로서 수 안에 머무르고 온몸에 두루한다고 보며, 상ㆍ행ㆍ식이 곧 나로서 수 안에 머무르고 온몸에 두루한다고 보나니, 이것이 ‘수 안에 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云何見我中受?謂色是我,受在其中,想、行、識是我,受在其中。云何見受中我?謂色是我,於受中住,周遍其四體;想、行、識是我,於受中住,周遍其四體,是名受中我。
어떻게 ‘상(想)은 곧 나[我]다’라고 보는가? 이른바 6상신(想身)이니, 눈으로 부딪쳐 생기는 상과 귀ㆍ코ㆍ혀ㆍ몸ㆍ뜻으로 부딪쳐 생기는 상입니다. 이 6상신 하나하나를 곧 나라고 보나니 이것이 ‘상은 곧 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상은 나와 다르다’고 보는가? 이른바 색을 곧 나라고 보고는 상은 곧 내 것이라 보며, 식(識)14)을 곧 나라고 보고는 상을 곧 내 것이라고 보나니, 이것이 ‘상은 나와 다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云何見想卽是我?謂六想身—眼觸生想,耳、鼻、舌、身、意觸生想。此六想身—見是我,是名想卽是我。云何見想異我?謂見色是我,想是我所,識是我,想是我所,是名想異我。
어떻게 ‘나 안에 상이 있다’고 보는가? 이른바 색은 곧 나로서 상은 그 안에 머무른다고 보며, 수ㆍ행ㆍ식이 곧 나로서 상은 그 안에 머무른다고 봅니다.
어떻게 ‘상 안에 나가 있다’고 보는가? 이른바 색이 곧 나로서 상 안에 머무르고 온몸에 두루한다고 보나니15), 이것이 ‘상 안에 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云何見我中想?謂色是我,想在中住,受、行、識是我,想在中住。云何見想中我?謂色是我,於想中住,周遍其四體,是名想中我。
어떻게 ‘행(行)은 곧 나[我]다’라고 보는가? 이른바 6사신(思身)이니, 눈으로 부딪쳐 생기는 의도[思]와 귀ㆍ코ㆍ혀ㆍ몸ㆍ뜻으로 부딪쳐 생기는 의도입니다. 이 6사신 하나하나를 곧 나라고 보나니 이것이 ‘행은 곧 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행은 곧 나와 다르다’고 보는가? 이른바 색을 곧 나라고 보고는 행은 곧 내 것이라고 보며, 수ㆍ상ㆍ식을 곧 나라고 보고는 행은 곧 내 것이라고 보나니, 이것이 ‘행은 곧 나와 다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云何見行是我?謂六思身—眼觸生思,耳、鼻、舌、身、意觸生思。於此六思身—見是我,是名行卽是我。云何見行異我?謂色是我,行是我所。受、想、識是我,行是我所,是名行異我。
어떻게 ‘나 안에 행이 있다’고 보는가? 이른바 색은 곧 나로서 행이 그 안에 머무른다고 보며, 수ㆍ상ㆍ행16)ㆍ식이 곧 나로서 행은 그 안에 머무른다고 보나니, 이것이 ‘나 안에 행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행 안에 나가 있다’고 보는가? 이른바 색이 곧 나로서 행 안에 머물러 온몸에 두루한다고 보며, 이른바 수ㆍ상ㆍ식이 곧 나로서 행 안에 머물러 온몸에 두루한다고 보나니 이것이 ‘행 안에 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云何見我中行?謂色是我,行在中住。受、想、行、識是我,行在中住,是謂我中行。云何見行中我?謂色是我,於行中住,周遍其四體,謂受、想、識是我,於行中住,周遍其四體,是名行中我。
어떻게 ‘식(識)은 곧 나[我]다’고 보는가? 이른바 6식신(識身)이니, 안식과 이식ㆍ비식ㆍ설식ㆍ신식ㆍ의식입니다. 이 6식신 하나하나를 곧 나라고 보나니 이것이 ‘식은 곧 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식은 나와 다르다’고 보는가? 이른바 색을 곧 나라고 보고는 식은 곧 내 것이라고 보며, 수ㆍ상ㆍ행을 곧 나라고 보고는 식은 곧 내 것이라고 보나니, 이것이 ‘식은 곧 나와 다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云何見識卽是我?謂六識身—眼識,耳、鼻、舌、身、意識身。於此六識身—見是我,是名識卽是我。云何見識異我?見色是我,識是我所,見受、想、行是我,識是我所,是名識異我。
어떻게 ‘나 안에 식이 있다’고 보는가? 이른바 색을 곧 나라고 보고는 식은 그 안에 머무른다고 보며, 수ㆍ상ㆍ행을 곧 나라고 보고는 식은 그 안에 머무른다고 보나니, 이것이 ‘나 안에 식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식 안에 나가 있다’고 보는가? 이른바 색이 곧 나로서 식 안에 머무르고 온몸에 두루한다고 보며, 수ㆍ상ㆍ행이 곧 나로서 식 안에 머무르고 온몸에 두루한다고 보나니, 이것이 ‘식 안에 나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云何見我中識?謂色是我,識在中住。受、想、行是我,識在中住,是名我中識。云何識中我?謂色是我,於識中住,周遍其四體。受、想、行是我,於識中住,周遍其四體,是名識中我。
이와 같이 거룩한 제자들은 네 가지 진리를 보아 빈틈없는 한결같음[無間等]을 얻고, 모든 삿된 소견을 끊어 미래에도 영원히 일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색은 과거에 속한 것이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현재에 속한 것이건, 안에 있는 것이건 밖에 있는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아름답건 추하건, 멀리 있는 것이건 가까이 있는 것이건, 그것은 한결같이 쌓이고 모인 것이니 다음과 같이 관찰합니다. 즉 ‘일체는 무상하다. 일체는 괴롭다. 일체는 공이다. 일체는 나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사랑하고 즐거워하여 거두어 받아들이거나, 보호하며 지키지 말아야 한다. 수ㆍ상ㆍ행ㆍ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것을 사랑하고 즐거워하여 거두어 받아들이거나, 보호하며 지키지 말아야 한다’고 이렇게 관찰합니다.
如是聖弟子見四眞諦,得無閒等果,斷諸邪見,於未來世永不復起。所有諸色,若過去、若未來、若現在、若內、若外、若麤、若細,、若好、若醜、若遠、若近,一向積聚,作如是觀:‘一切無常、一切苦、一切空、一切非我,不應愛樂、攝受、保持。受、想、行、識亦復如是,不應愛樂、攝受、保持。’
이렇게 관찰한 뒤에는 마음을 잘 잡아매고 법에 어리석지 않으며 다시 관찰하고 정진하여 모든 게으른 마음을 떠나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이 고요히 쉬고 고요함과 평정에 머무릅니다. 그래서 모든 도품(道品)을 갖추고 수행이 만족하여 길이 모든 악을 여읩니다. 태우지 않은 것이 없고 소멸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소멸해 일어나지 않고, 감해서 더하지 않으며, 끊어서 나지 않고, 나지도 않고 취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열반을 깨달아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라고 스스로 압니다.”
如是觀,善繫心住,不愚於法,復觀精進,離諸懈怠,心得喜樂,身心猗息,寂靜捨住。具諸道品,修行滿足,永離諸惡,非不消煬、非不寂滅、滅而不起、減而不增、斷而不生,不生、不取、不著,自覺涅槃:‘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사리불이 이 법을 설명했을 때, 60명의 비구들은 모든 번뇌를 받지 않고 마음이 해탈하였다.
舍利弗說是法時,六十比丘不受諸漏,心得解脫。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110. 살차경(薩遮經)17)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비사리(毘舍離)의 미후지(獼猴池) 곁에 계셨다.
그때 비사리국에는 총명하고 지혜로워 모든 이론을 잘 이해하고, 그래서 스스로 총명함을 자부하는 교만스러운 니건자(尼揵子)가 있었다. 그는 널리 모든 이론을 섭렵하였고, 묘한 지혜는 빈틈이 없었으며, 대중을 위해 설법하면 모든 논사들을 뛰어넘었다. 그는 항상 이런 생각을 하였다.
一時,佛住毘舍離獼猴池側。毘舍離國有尼揵子,聰慧明哲,善解諸論,有聰明慢。所廣集諸論,妙智入微,爲衆說法,超諸論師,每作是念:
‘나를 당적할 어떤 사문 바라문도 없다. 나아가 여래와도 능히 함께 논의할 수 있다. 모든 논사들은 내 이름만 들어도 이마에 진땀이 흐르고, 겨드랑에서 땀이 나며, 털구멍에서는 물이 흐를 것이다. 내 이론의 바람은 능히 풀을 쓰러뜨리고 나무를 꺾으며, 쇠나 돌을 부수고 모든 용이나 코끼리까지도 항복받거늘 하물며 인간인 논사들이 어찌 나를 당할 수 있겠는가.’
“諸沙門、婆羅門無敵我者,乃至如來亦能共論。諸論師輩,聞我名者,頭額津,腋下汗,毛孔流水;我論議風,能偃草折樹,摧破金石,伏諸龍象,何況人閒諸論師輩,能當我者!”
이때 아습파서(阿濕波誓)라는 비구가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위엄스런 태도로 조용하고 상냥하며 단정한 눈길과 편안한 걸음으로 성으로 들어가 걸식하였다.
이때 살차니건자(薩遮尼揵子)는 작은 볼 일이 있어 여러 마을을 둘러 성문을 나오다가 멀리서 아습파서 비구를 보고는 곧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時,有比丘名阿濕波誓,晨朝著衣持鉢,威儀詳序,端視平涉,入城乞食。爾時,薩遮尼楗子,有少緣事,詣諸聚落,從城門出,遙見比丘阿濕波誓,卽詣其所,問言:
“사문 구담은 제자들을 위해 어떻게 설법하며 어떤 법으로 제자들을 가르쳐 닦고 익히게 합니까?”
“沙門瞿曇爲諸弟子,云何說法,以何等法,教諸弟子,令其修習?”
아습파서는 말하였다.
阿濕波誓言:
“화종(火種) 거사18)여,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이 설법하시어 모든 제자들을 가르쳐 공부하게 하십니다. 즉 ‘모든 비구들아, 색에는 나가 없다고 관찰하고, 수ㆍ상ㆍ행ㆍ식에도 나는 없다고 관찰하라. 그래서 부지런히 방편을 써서 이 5수음은 병과 같고, 종기와 같으며, 가시와 같고, 살기와 같으며, 무상하고, 괴로우며, 공이요, 나가 아니라고 관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火種居士,世尊如是說法教諸弟子,令隨修學。言:‘諸比丘,於色當觀無我,受、想、行、識當觀無我。此五受陰勤方便觀,如病、如癰、如刺、如殺,無常、苦、空、非我。’”
살차니건자는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불쾌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薩遮尼揵子聞此語,心不喜,作是言:
“아습파서여, 분명 당신이 잘못 들은 것입니다. 사문 구담은 끝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 사문 구담이 그렇게 말했다면 그것은 삿된 소견입니다. 내가 이제 그를 찾아가 힐난하여 그 소견을 그만두게 하리다.”
“阿濕波誓,汝必誤聽,沙門瞿曇終不作是說。若沙門瞿曇作是說者,則是邪見,我當詣彼,難詰令止。”
그때 살차니건자는 마을의 여러 리차(離車)19)들이 모이는 곳으로 가서 여러 리차들에게 말하였다.
爾時,薩遮尼犍子往詣聚落,諸離車等集會之處,語諸離車言:
“나는 오늘 사문 구담의 제일가는 제자인 아습파서라는 사람을 만나 가볍게 논의하였다. 만일 그가 말한 것과 같다면, 나는 저 사문 구담을 찾아가 논의하여 그를 앞뒤로 잡아 흔들고 빙빙 돌려 반드시 내 생각을 따르게 하리라. 마치 장부가 풀을 베고는 그 줄기를 쥐고 공중에 흔들어 지저분한 잡티를 떨어버리는 것처럼, 나도 또한 그와 같이 사문 구담과 논의하고 힐난하여 그 핵심을 잡아 앞뒤로 흔들고 빙빙 돌려 그의 생각을 따르면서 그 삿된 말을 버리게 하리라.
“我今日見沙門瞿曇第一弟子,名阿濕波誓,薄共論議,若如其所說者,我當詣彼沙門瞿曇。與共論議,進卻迴轉,必隨我意。譬如士夫刈拔茇草,手執其莖,空中抖擻,除諸亂穢;我亦如是,與沙門瞿曇論議難詰,執其要領,進卻迴轉,隨其所欲,去其邪說。
또 마치 술집에서 술 주머니를 쥐어짜 맑은 술을 거르고 그 술찌끼를 버리는 것처럼, 나도 또한 그와 같이 사문 구담을 찾아가 논의하고 힐난하여 앞뒤로 잡아 흔들고 빙빙 돌려 그 맑은 진수를 취하고 그 삿된 말은 버리게 하리라. 또 마치 자리 장수가 자리에 더러운 물건을 담았다가 시장에 팔려고 할 때는 물로 자리를 씻어 모든 고약한 냄새를 없애는 것처럼, 나도 또한 그와 같이 사문 구담을 찾아가 논의하고 힐난하여 앞뒤로 잡아 흔들고 빙빙 돌려 그 핵심을 잡고 온갖 더러운 말을 버리게 하리라.
如沽酒家執其酒囊,壓取淸醇,去其糟滓;我亦如是,詣沙門瞿曇論議難詰,進卻迴轉,取其淸眞,去諸邪說。如織席師,以席盛諸穢物,欲市賣時,以水洗澤,去諸臭穢;我亦如是,詣沙門瞿曇所,與共論議,進卻迴轉,執其綱領,去諸穢說。
또 마치 왕가의 코끼리를 다루는 사람이 술에 취한 큰 코끼리를 끌고 깊은 물에 들어가 그 몸을 씻고 사지와 귀와 코를 두루 목욕시켜 모든 더러운 티끌을 닦는 것처럼, 나도 또한 그와 같이 사문 구담을 찾아가 논의하고 힐난하여 앞뒤로 잡아 흔들고 빙빙 돌리기를 내 마음대로 하고, 그 핵심을 잡고 온갖 더러운 말은 버리게 하리라. 그대들 모든 리차 사람들도 또한 함께 가서 그 승부를 보아야 하리라.”
譬如王家調象之師,牽大醉象,入深水中,洗其身體、四支、耳、鼻,周遍沐浴,去諸麤穢;我亦如是,詣沙門瞿曇所,論議難詰,進卻迴轉,隨意自在,執其要領,去諸穢說。汝諸離車,亦應共往觀其得失。”
그 중 어떤 리차족 사람은 이렇게 말하였다.
中有離車作如是言:
“살차니건자가 사문 구담과 서로 논의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若薩遮尼犍子能與沙門瞿曇共論議者,無有是處。”
또 어떤 사람은 말하였다.
復有說言:
“살차니건자는 총명하고 날카로워 능히 함께 논의할 수 있으리라.”
“薩遮尼犍子聰慧利根,能共論議。”
이때 500명의 리차족 사람들이 부처님과 논의하기 위해 살차니건자와 함께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갔다.
그때 세존께서는 큰 숲 속의 한 나무 밑에 앉아 천주(天住)20)에 들어 계셨다. 이때 많은 비구들은 방 밖으로 나와 숲 속을 거닐다가 멀리서 살차니건자를 보았다. 그는 차츰 비구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와 모든 비구들에게 물었다.
時,有五百離車與薩遮尼犍子,共詣佛所,爲論議故。爾時,世尊於大林中,坐一樹下,住於天住。時,有衆多比丘出房外林中經行,遙見薩遮尼犍子來,漸漸詣諸比丘所,問諸比丘言:
“사문 구담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沙門瞿曇住在何所?”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比丘答言:
“큰 숲 속 나무 밑에서 천주에 들어 계십니다.”
“在大林中,依一樹下,住於天住。”
살차니건자는 곧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공손히 인사하고 한쪽에 앉았다. 모든 리차족 장자들도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갔는데 개중엔 공경을 표하는 사람도 있었고, 합장하고 인사하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들 인사를 마치고 한쪽에 서자, 이때 살차니건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薩遮尼犍子卽詣佛所,恭敬問訊,於一面坐。諸離車長者亦詣佛所,有恭敬者,有合掌問訊者,問訊已,於一面住。時,薩遮尼犍子白佛言:
“나는 사문 구담께서 이렇게 설법하고, 이렇게 여러 제자 비구들을 가르친다고 들었습니다. 즉 ‘색에는 나가 없다고 관찰하고, 수ㆍ상ㆍ행ㆍ식에도 나가 없다고 관찰하라. 부지런히 방편을 써서 이 5수음은 병과 같고, 종기와 같으며, 가시와 같고, 살기와 같으며, 무상하고 괴로우며 공이요 나가 아니라고 관찰하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친다 들었습니다. 정말 구담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십니까? 아니면 전하는 사람이 구담을 비방하려고 하는 말입니까? 말씀하신 그대로 한 말입니까, 말씀하신 그대로 한 말이 아닙니까? 법다운 말입니까? 법과 법을 따라서 한 말입니까?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이 찾아와서 힐난했을 때, 지는 일은 없겠습니까?”
“我聞瞿曇作如是說法,作如是教授諸弟子—教諸弟子於色觀察無我,受、想、行、識觀察無我,此五受陰勤方便觀察,如病、如癰、如刺、如殺,無常、苦、空、非我。—爲是瞿曇有如是教,爲是傳者毀瞿曇耶?如說說耶?不如說說耶?如法說耶?法次法說耶?無有異忍來相難詰,令墮負處耶?”
부처님께서 살차니건자에게 말씀하셨다.
佛告薩遮尼犍子:
“그대가 들은 바와 같습니다. 그는 내가 말한 그대로 말하였고, 법답게 말하였으며, 법과 법을 따라 말하였습니다. 나를 비방하기 위해서가 아니요, 또한 힐난하더라도 나를 지게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나는 실로 모든 제자들을 위해 그렇게 설법하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실로 모든 제자들을 가르쳐 내 법의 가르침을 따르게 하고, ‘색에는 나가 없고, 수ㆍ상ㆍ행ㆍ식에도 나는 없다’고 관찰하게 하며, ‘이 5수음은 병과 같고, 종기와 같으며, 가시와 같고, 살기와 같으며 무상하고 괴로우며 공이요 나가 아니다’라고 관찰하도록 항상 가르칩니다.”
“如汝所聞,彼如說說、如法說、法次法說,非爲謗毀,亦無難問令墮負處。所以者何?我實爲諸弟子如是說法,我實常教諸弟子,令隨順法教,令觀色無我。受、想、行、識無我,觀此五受陰如病,如癰、如刺、如殺、無常、苦、空、非我。”
살차니건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薩遮尼犍子白佛言:
“구담이여, 내가 이제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마음대로 하시오.”
“비유하면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이 다 땅을 의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이 색(色)이 곧 나[我人]로서 선과 악은 그것으로부터 생기며, 수ㆍ상ㆍ행ㆍ식이 곧 나로서 선과 악은 그것으로부터 생깁니다. 다시 비유하면 사람 세계나 귀신 세계나 약초나 나무들이 다 땅을 의지하여 나고 자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이 색이 곧 나이고, 수ㆍ상ㆍ행ㆍ식이 곧 나입니다.”
“瞿曇,我今當說譬。”佛告薩遮尼犍子:“宜知是時。”“譬如世閒一切所作皆依於地。如是色是我人,善惡從生;受、想、行、識是我人,善惡從生。又復譬如人界、神界、藥草、樹木,皆依於地,而得生長;如是色是我人,受、想、行、識是我人。”
부처님께서는 화종 거사에게 말씀하셨다.
佛告火種居士:
“그대는 ‘색이 곧 나요, 수ㆍ상ㆍ행ㆍ식이 곧 나다’라고 말했습니까?”
“그렇습니다. 구담이여, 색이 곧 나요, 수ㆍ상ㆍ행ㆍ식이 곧 나입니다. 이 여러 사람들도 다 그렇게 말합니다.”
“汝言色是我人,受、想、行、識是我人耶?”答言:“如是,瞿曇,色是我人,受、想、行、識是我人。此等諸衆悉作是說。”
부처님께서 화종 거사에게 말씀하셨다.
佛告火種居士:
“그러면 우선 그대의 주장을 세워 그것으로부터 여러 사람들을 이끄시겠습니까?”
“且立汝論,本用引衆人爲。”
살차니건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薩遮尼犍子白佛言:
“색(色)이 곧 나[我人]입니다.”
“色實是我人。”
부처님께서 화종 거사에게 말씀하셨다.
佛告火種居士:
“내가 이제 그대에게 물으리니 마음대로 대답하시오. 비유하면, 국왕은 자기 나라에 죄를 지은 사람이 있으면 죽이거나 혹은 묶으며 혹은 내쫓고 혹은 때리며 손과 발을 자릅니다. 또 만일 공을 세우는 사람이 있으면 코끼리ㆍ말ㆍ수레ㆍ성ㆍ읍ㆍ재물ㆍ보배를 주나니, 이 모두를 다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구담이여.”
“我今問汝,隨意答我。譬如國王,於自國土有罪過者,若殺、若縛、若擯、若鞭,斷絕手足;若有功者,賜其象馬,車乘、城邑、財寶,悉能爾不?”答言:“能爾。瞿曇。”
“무릇 주인이라면 다 마음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구담이여.”
“그대는 ‘색이 곧 나요, 수ㆍ상ㆍ행ㆍ식이 곧 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마음대로 그것을 이렇게도 할 수 있고 이렇지 않게도 할 수 있겠습니까?”
佛告火種居士:“凡是主者,悉得自在不?”答言:“如是,瞿曇。”佛告火種居士:“汝言色是我,受、想、行、識卽是我,得隨意自在,令彼如是,不令如是耶?”
이때 살차니건자는 잠자코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화종 거사에게 말씀하셨다.
時,薩遮尼犍子默然而住。佛告火種居士:
“빨리 말하시오. 빨리 말하시오. 왜 잠자코 있습니까?”
“速說速說。何故默然?”
이렇게 두 번 세 번 독촉하였으나 살차니건자는 여전히 잠자코 있었다. 이때 금강역사 귀신이 금강저를 들고 사나운 불꽃을 일으키면서 허공에서 살차니건자의 머리 위로 내려와 이렇게 말하였다.
如是再三,薩遮尼犍子猶故默然。時,有金剛力鬼神持金剛杵,猛火熾然,在虛空中臨薩遮尼犍子頭上,作是言:
“세존께서 두 번 세 번 물으시는데 너는 왜 대답하지 않는가? 내가 이 금강저로 네 머리통을 부수어 일곱 조각을 내리라.”
“世尊再三問,汝何故不答?我當以金剛杵碎破汝頭,令作七分。”
그러나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살차니건자만 금강신을 보았고 다른 무리들은 보지 못하였다. 살차니건자는 크게 두려워하며 부처님께 아뢰었다.
佛神力故,唯令薩遮尼犍子見金剛神,餘衆不見。薩遮尼犍子得大恐怖,白佛言:
“그렇지 않습니다. 구담이여.”
“不爾,瞿曇。”
부처님께서는 살차니건자에게 말씀하셨다.
佛告薩遮尼犍子:
“천천히 사유한 뒤에 대답하시오. 그대는 아까 대중 가운데서 ‘색이 곧 나요, 수ㆍ상ㆍ행ㆍ식이 곧 나다’라고 말하였는데 지금은 아니라고 말하니, 앞뒤가 서로 어긋납니다. 그대는 이전에 늘 ‘색이 곧 나요, 수ㆍ상ㆍ행ㆍ식이 곧 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화종 거사여, 내가 이제 그대에게 묻겠습니다. 색은 영원합니까, 무상합니까?”
“徐徐思惟,然後解說。汝先於衆中說色是我,受、想、行、識是我,而今言不?前後相違。汝先常說言:‘色是我,受、想、行、識是我。’火種居士,我今問汝。色爲常耶?爲無常耶?”
“무상합니다. 구담이여.”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입니까?”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구담이여.”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입니다.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이 과연 그런 것에 대해 ‘나다. 나와 다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고 보겠습니까?”
答言:“無常,瞿曇。”復問:“無常者,是苦耶?”答言:“是苦,瞿曇。”復問:“無常、苦者,是變易法,多聞聖弟子寧於中見我、異我、相在不?”
“아닙니다. 구담이여.”
“수ㆍ상ㆍ행ㆍ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答曰:“不也。瞿曇。”“受、想、行、識,亦如是說。”
부처님께서는 화종 거사에게 말씀하셨다.
佛告火種居士:
“그대는 잘 생각한 뒤에 말하시오.”
“汝好思而後說。”
다시 화종 거사에게 물으셨다.
復問火種居士:
“만일 색에 대해서 욕심을 여의지 못하고, 탐욕을 여의지 못하며, 생각을 여의지 못하고, 사랑을 여의지 못하며, 갈망을 여의지 못하였다면, 그 색이 변하거나 혹은 달라질 때에는 근심과 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생기겠습니까?”
“若於色未離貪、未離欲、未離念、未離愛、未離渴,彼色若變、若異,當生憂、悲、惱、苦不?”
“그렇습니다. 구담이여.”
“수ㆍ상ㆍ행ㆍ식에 있어서도 그와 같습니다.”
答曰:“如是。瞿曇,受、想、行、識,亦如是說。”
다시 화종 거사에게 물으셨다.
復問:
“색에 대해서 탐욕을 여의고, 욕심을 여의며, 생각을 여의고, 사랑을 여의며, 갈망을 여의었다면, 그 색이 변하거나 혹은 달라지더라도 근심과 슬픔ㆍ번민ㆍ괴로움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구담이여,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火種居士,於色離貪離欲,離念離愛離渴,彼色若變若異,則不生憂悲惱苦耶?”答曰:“如是。瞿曇,如實無異。”
“수ㆍ상ㆍ행ㆍ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화종 거사여, 비유하면 어떤 장부가 여러 가지 고통을 몸으로 겪으며 늘 고통과 함께 지내는데, 그 고통을 끊지 않고 버리지도 않고서 과연 즐거움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구담이여.”
“受、想、行、識亦如是說。火種居士,譬如士夫身嬰衆苦,常與苦俱,彼苦不斷不捨,當得樂不?”答言:“不也,瞿曇。”
“그렇습니다. 화종 거사여, 여러 가지 고통을 몸으로 겪으며 항상 그 고통과 함께한다면 그 고통을 끊지 않고 버리지 않고서는 즐거움을 얻을 수 없습니다. 화종 거사여, 비유하면 장부가 도끼를 가지고 산에 들어가 단단한 심이 있는 재목을 찾다가, 크고 살찌고 곧은 파초를 보고는 곧 뿌리와 잎을 자르고 껍질을 모조리 벗겨 보았지만 단단한 심은 도무지 없는 것과 같습니다.
“如是,火種居士,身嬰衆苦,常與苦俱,彼苦不斷、不捨,不得樂也。火種居士,譬如士夫持斧入山,求堅實材。見芭蕉樹洪大傭直,卽斷其根葉,剽剝其皮,乃至窮盡,都無堅實。
화종 거사여, 그대도 또한 그와 같아, 스스로 주장을 세웠지만 내가 이제 그 진실한 이치를 찾아보니 단단한 심이 도무지 없는 것이 마치 파초와 같습니다. 그런데도 그대는 대중 가운데서 감히 ‘나는 아무리 많이 아는 사문 바라문이라도, 또 많이 아는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이라 할지라도 서로 논의했을 때 항복하지 않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고 말했습니다.
火種居士,汝亦如是,自立論端。我今善求眞實之義,都無堅實,如芭蕉樹也。而於此衆中敢有所說。我不見沙門、婆羅門中,所知、所見能與如來、應、等正覺所知、所見共論議,不摧伏者。
그리고 또 스스로 ‘내 이론의 바람은 풀을 쓰러뜨리고, 나무를 꺾으며, 쇠와 돌을 부수고, 용과 코끼리를 항복받으며, 또 반드시 그들로 하여금 이마에서 진땀이 흐르고 겨드랑에서 땀이 나며 털구멍에서 물이 흐르게 하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대는 이제 자기 주장을 논의하다가 스스로 서지 못하고 앞서 오만하게 떠들었던 말이 항복되고 말았습니다. 자기 주장에 전력을 다하였지만 여래의 털 하나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而便自說:‘我論議風,偃草折樹,能破金石,調伏龍象,要能令彼額津腋汗,毛孔水流。’汝今自論己義而不自立,先所誇說能伏彼相,今盡自取,而不能動如來一毛。”
그때 세존께서는 대중 가운데서 울다라승(鬱多羅僧)을 헤치고 가슴을 나타내어 보이면서 말씀하셨다.
爾時,世尊於大衆中,被鬱多羅僧,現胸而示:
“너희들은 시험삼아 살펴보거라. 여래의 털 하나인들 움직이게 하였는가?”
“汝等試看。能動如來一毛以不?”
그때 살차니건자는 잠자코 머리를 숙이고 부끄러움으로 얼굴빛이 변하였다. 그때 대중 가운데 있던 돌목가(突目佉)라는 리차족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여민 뒤에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爾時,薩遮尼犍子默然低頭,慚愧失色。爾時,衆中有一離車,名突目佉,從座起,整衣服,合掌白佛言:
“세존이시여, 제가 비유를 들어 말하도록 허락하소서.”
“마음대로 하시오.”
“世尊,聽我說譬。”佛告突目佉:“宜知是時。”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되를 가지고 커다란 곡식 무더기에서 두세 말 정도를 퍼낸 것과 같습니다. 지금 이 살차니건자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재물이 많은 큰 부자 장자가 갑자기 죄를 지어 재물 전부가 왕가에 귀속된 것처럼, 살차니건자도 또한 그와 같아서 그가 가진 말재주는 다 여래께 거두어졌습니다. 비유하면 성읍이나 마을 곁에 큰 강이 있는데 남녀노소가 그 강에 들어가 놀다가 물 속에서 게를 잡아 그 발을 다 끊고 육지에 두면 게는 발이 없기 때문에 다시 강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살차니건자도 또한 그와 같아서 그가 가진 모든 말재주는 다 여래에 의해 끊겼으니, 끝내 다시는 감히 여래께 찾아와 적대적으로 논쟁하지 못할 것입니다.”
突目佉白佛言:“世尊,譬如有人執持斗斛,於大聚穀中,取二三斛,今此薩遮尼犍子亦復如是。世尊,譬如長者巨富多財,忽有罪過,一切財物悉入王家,薩遮尼犍子亦復如是。所有才辯悉爲如來之所攝受。譬如城邑、聚落邊有大水,男女大小悉入水戲,取水中蟹,截斷其足,置於陸地,以無足故,不能還復入於大水。薩遮尼犍子亦復如是。諸有才辯悉爲如來之所斷截,終不復敢重詣如來,命敵論議。”
그때 살차니건자가 불꽃처럼 화를 내며 리차족 사람 돌목가를 호통쳤다.
爾時,薩遮尼犍子忿怒熾盛,罵唾突目佉離車言:
“이 더럽고 무식한 놈아, 알지도 못하면서 무엇을 지껄이느냐. 내가 사문 구담과 논의하는데 네가 무슨 참견이냐?”
“汝麤疏物,不審諦何爲其鳴?吾自與沙門瞿曇論,何豫汝事?”
살차니건자는 돌목가를 꾸짖은 뒤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薩遮尼犍子呵罵突目佉已,復白佛言:
“저 천하고 더러운 속물의 말은 일단 접어두고, 내가 이제 달리 물을 것이 있습니다.”
“마음대로 물으시오. 묻는 대로 대답하리다.”
“구담이여, 제자들을 위해 어떻게 설법하여 그 의혹을 떠나게 하십니까?”
“置彼凡輩鄙賤之說,我今別有所問。”佛告薩遮尼犍子:“恣汝所問,當隨問答。”“云何?瞿曇,爲弟子說法,令離疑惑?”
“나는 모든 제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모든 색(色)은 과거에 속한 것이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현재에 속한 것이건, 안에 있는 것이건 밖에 있는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아름답건 추하건, 멀리 있는 것이건 가까이 있는 것이건, 그 일체는 나도 아니요, 나와 다르지도 않으며,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사실 그대로 관찰하라. 수ㆍ상ㆍ행ㆍ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고 말합니다.
佛告火種居士:“我爲諸弟子說諸所有色,若過去、若未來、若現在,若內、若外、若麤、若細,若好、若醜,若遠、若近,彼一切如實觀察非我、非異我、不相在;受、想、行、識亦復如是。
그들은 이렇게 배워서 반드시 도를 보아 무너트리지 않고 감당해 나가 성취하며, 그것을 싫어하고, 여의어야 할 것을 알고 보아서 감로문(甘露門)을 지킵니다. 그래서 비록 구경의 진리를 모두가 얻지는 못하더라도 모두들 열반으로 향하나니, 이렇게 제자들은 내가 가르치는 법을 좇아 의혹을 떠나게 됩니다.”
彼學必見迹不斷壞,堪任成就,厭離知見,守甘露門,雖非一切悉得究竟,且向涅槃。如是弟子從我教法,得離疑惑。”
다시 물었다.
復問:
“구담이여, 다시 어떻게 모든 제자들을 가르쳐 그들을 불법 안에서 모든 번뇌를 다하게 하여 번뇌[漏]가 없게 하시며,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로 해탈하여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증득해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라고 스스로 알게 하십니까?”
“瞿曇,復云何教諸弟子,於佛法得盡諸漏無漏,心解脫、慧解脫,現法自知作證:‘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부처님께서 화종 거사에게 말씀하셨다.
佛告火種居士:
“바로 이런 법입니다. 즉 존재하는 모든 색은 과거에 속한 것이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현재에 속한 것이건, 안에 있는 것이건 밖에 있는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아름답건 추하건, 멀리 있는 것이건 가까이 있는 것이건, 그 일체는 나도 아니요, 나와 다르지도 않으며,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사실 그대로 아는 것입니다. 수ㆍ상ㆍ행ㆍ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正以此法,諸所有色,若過去、若未來、若現在,若內、若外,若麤、若細,若好、若醜,若遠、若近,彼一切如實知非我、非異我、不相在;受、想、行、識亦復如是。
그들은 그때 세 가지 위없음[三種無上]을 성취하나니, 즉 지혜의 위없음[智無上]과 해탈의 위없음[解脫無上]과 해탈지견의 위없음[解脫知見無上]입니다. 그들은 이 세 가지 위없음을 성취한 뒤에 그 스승을 공경하고 존중하며 공양하기를 부처님과 같이 합니다. 세존은 모든 법을 깨달아 그 법으로써 제자들을 다루어 안온을 얻게 하고, 두려움이 없게 하며, 마음을 항복받아 지극히 고요하게 하고, 열반을 완전히 이루게 합니다. 세존은 이 열반을 위하여 모든 제자들에게 설법합니다.
彼於爾時成就三種無上—智無上、解脫無上、解脫知見無上。成就三種無上已,於大師所恭敬、尊重、供養如佛。世尊覺一切法,卽以此法調伏弟子,令得安隱、令得無畏、調伏寂靜、究竟涅槃。世尊爲涅槃故,爲弟子說法。
화종 거사여, 나의 모든 제자들은 이 법 안에서 모든 번뇌[漏]를 다하게 되어 심해탈(心解脫)을 얻고 혜해탈(慧解脫)을 얻습니다. 그래서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증득하여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라고 스스로 압니다.”
火種居士,我諸弟子於此法中,得盡諸漏,得心解脫,得慧解脫,於現法中自知作證:‘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살차니건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薩遮尼犍子白佛言:
“구담이시여, 장부가 사납게 휘두르며 내리치는 칼날은 오히려 면할 수 있겠지만 구담의 이론의 손아귀에서는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또 지독한 독사도 오히려 피할 수 있고, 들판을 태우는 사나운 불길도 오히려 피할 수 있으며, 술 취한 흉악한 코끼리 또한 면할 수 있고, 사납고 굶주린 사자도 다 면할 수 있겠지만, 사문 구담의 이론의 손아귀에서는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저같이 어리석고 경박한 사내는 완전치 못한 이론을 가지고 논의하기 위해 구담께 찾아올 일이 아닙니다.
“瞿曇,猶如壯夫,鋒刃亂下,猶可得免;瞿曇論手,難可得脫。如盛毒蛇,猶可得避;曠澤猛火,猶可得避;兇惡醉象,亦可得免;狂餓師子,悉可得免;沙門瞿曇論議手中,難可得脫。非我凡品,輕躁鄙夫,論具不備,以論議故,來詣瞿曇。
사문 구담이시여, 이 비사리는 풍족하고 즐거운 나라로써 차파리지제(遮波梨支提)ㆍ칠암라수지제(漆菴羅樹支提)ㆍ다자지제(多子支提) 등이 있습니다. 구담께서는 구루타지제(拘樓陀支提)나 바라수지지제(婆羅受持支提), 사중담지제(捨重擔支提)나 역사보관지제(力士寶冠支提)에 머무소서.
“沙門瞿曇,此毘舍離豐樂國土,有遮波梨支提、漆菴羅樹支提、多子支提、瞿曇在拘樓陁支提、婆羅受持支提、捨重擔支提、力士寶冠支提。
그래서 세존이시여, 비사리국에 계시면서 모든 하늘ㆍ악마ㆍ범ㆍ사문ㆍ바라문과 모든 세간을 안락하게 하소서. 그래서 세존을 항상 공경하여 받들어 섬기고 공양함으로써 저 모든 하늘ㆍ악마ㆍ범ㆍ사문ㆍ바라문들로 하여금 오랜 세월 동안 안락을 얻게 하소서. 원하옵건대 이곳에 계시다가 내일 아침에는 대중들과 함께 변변찮은 저의 공양을 받아주십시오.”
世尊,當安樂於此毘舍離國,諸天、魔、梵、沙門、婆羅門,及諸世閒,於世尊所,常得恭敬、奉事、供養,令此諸天、魔、梵、沙門、婆羅門,長夜安樂。唯願止此,明朝與諸大衆,受我薄食。”
그때 세존께서는 잠자코 허락하셨다. 이때 살차니건자는 세존께서 잠자코 허락하신 것을 알고 대중들과 함께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갔다.
그때 살차니건자는 가는 도중에 모든 리차족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爾時,世尊默然而許。時,薩遮尼犍子知佛世尊默然受請已,歡喜隨喜,從座起去。爾時,薩遮尼犍子於彼道中,語諸離車:
“나는 이미 사문 구담과 모든 대중들에게 음식을 공양하겠다고 청하였소. 그대들도 각기 한 솥씩 밥을 준비해 내게 보내시오.”
“我已請沙門瞿曇及諸大衆,供設飯食,汝等人各辦一釜食,送至我所。”
모든 리차족 사람들은 각각 그 집으로 돌아가 밤을 세워 준비하였고 이른 아침에 살차니건자에게 보내었다. 살차니건자는 이른 아침에 깨끗이 소제하고 자리를 펴고 깨끗한 물을 준비한 뒤 사람을 보내어 부처님께 아뢰었다.
諸離車各還其家,星夜供辦,晨朝送至薩遮尼犍子所,薩遮尼犍子晨朝灑掃敷座,供辦淨水,遣使詣佛,白言:
“때가 되었습니다.”
“時到。”
그때 세존께서는 대중들과 함께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살차니건자의 집으로 가서 대중 앞에 앉으셨다. 살차니건자는 손수 청정한 음식을 베풀어 대중을 만족하게 하였다. 공양이 끝나고 발우도 씻고 나자, 살차니건자는 부처님께서 공양을 마치고 발우를 씻으신 줄을 알고 낮은 평상을 가지고 와서 부처님 앞에 앉았다.
爾時,世尊與諸大衆,著衣持鉢,往薩遮尼犍子所,大衆前坐。薩遮尼犍子自手奉施淸淨飮食,充足大衆。食已,洗鉢竟。薩遮尼犍子知佛食竟,洗鉢已,取一畀牀於佛前坐。
그때 세존께서는 살차니건자를 위해 수희게(隨喜偈)를 말씀하셨다.
爾時,世尊爲薩遮尼犍子說,隨喜偈言:
모든 대회 중에서는
불을 섬기는 것 제일이고
위다(闈陀) 경전 중에서는
바비제(婆毘諦)가 제일이네.
於諸大會中,
奉火爲其最,
闈陁經典中,
婆毘諦爲最。
사람 중에선 임금이 제일
물 중에선 바다가
뭇 별 중에선 달이 제일
밝음 중에선 해가 제일
시방의 하늘과 사람 중에선
등정각(等正覺)이 제일이네.
人中王爲最
諸河海爲最
諸星月爲最
諸明日爲最。
十方天人中
等正覺爲最。
그때 세존께서는 살차니건자를 위해 여러 가지로 설법하시어 가르치고 기쁘게 하신 뒤에 본래 계시던 처소로 돌아가셨다. 이때 모든 비구들은 돌아가던 길에 서로 논의하였다.
爾時,世尊爲薩遮尼犍子種種說法,示、教、照、喜已,還歸本處。時,諸比丘於彼道中衆共論議:
“저 500의 리차족 사람은 각기 살차니건자를 위해 음식을 마련해 주었다. 저 모든 리차족 사람들은 어떤 복을 받고, 살차니건자는 어떤 복을 받을까?”
“五百離車各爲薩遮尼犍子供辦飮食,彼諸離車於何得福?薩遮尼犍子於何得福?”
그때 모든 비구들은 자기 처소로 돌아가 옷과 발우를 챙겨 두고 발을 씻은 뒤에, 세존에게 나아가 머리 숙여 세존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앉아 아뢰었다.
爾時,諸比丘還自住處,擧衣鉢,洗足已,至世尊所,頭面禮足,退坐一面,白佛言: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아까 도중에서 ‘저 500의 리차족 사람들은 살차니건자를 위해 음식을 마련해 세존과 모든 대중들에게 공양하였다. 저 모든 리차족 사람들은 어떤 복을 받고, 살차니건자는 어떤 복을 받을까’ 하고 의논하였습니다.
“世尊,我等向於路中自共論議。五百離車爲薩遮尼犍子供辦飮食,供養世尊、諸大衆。彼諸離車於何得福?薩遮尼犍子於何得福?”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佛告諸比丘:
“저 모든 리차족 사람들은 살차니건자를 위해 음식을 마련하였으니 그들은 살차니건자를 인연하여 복을 얻을 것이요, 살차니건자는 부처님의 공덕을 복으로 얻을 것이다. 저 모든 리차족 사람들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있는 보시를 한 인연의 과보를 얻을 것이요, 살차니건자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없이 보시한 인연의 과보를 얻을 것이니라.”
“彼諸離車供辦飮食,爲薩遮尼犍子,於薩遮尼犍子所因緣得福,薩遮尼犍子得福佛功德。彼諸離車得施有貪、恚、癡因緣果報,薩遮尼犍子得施無貪、恚、癡因緣果報。”
피다라십문(彼多羅十問)21)과
차마(差摩)ㆍ염마(焰摩)ㆍ선니(仙尼)와
아누라(阿누羅)와 장자(長者)와
서(西)ㆍ모단(毛端)ㆍ살차(薩遮)에 대해 설하셨다.
彼多羅十問,
差摩焰仙尼,
阿㝹羅長者
西毛端薩遮。
雜阿含經卷第五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㓮造
1)
팔리어로는 uppala이고, 오발라(烏鉢羅)로도 음역한다. 청련화(淸蓮花)로 한역한다.
2)
팔리어로는 paduma이고, 적련화(赤蓮花)로 한역한다.
3)
팔리어로는 kumuda이고, 지희화(地喜花)로 한역한다. 색은 흰색 혹은 붉은색이고 줄기에는 가시가 있다. 또 아직 피지 않은 연꽃을 가리키기도 한다.
4)
팔리어로는 puṇḍarīka이고, 활짝 핀 흰 연꽃을 말한다.
5)
팔리어로는 Caraka이고 유행승(遊行僧)이란 뜻이다.
6)
이하에 거론되고 있는 자들은 부처님과 동시대를 살았던 유명한 6사외도(師外道)이다.
7)
7)팔리어로는 abhisamaya이고 통상적으로 현관(現觀)ㆍ증(證)으로 한역된다. 이해하다ㆍ요해하다ㆍ통달하다는 뜻이 있다.
8)
유(有)는 생사(生死)의 과보, 결(結)은 그 과보를 불러오는 번뇌를 뜻한다.
9)
팔리어로는 Anurdha이고 아나율(阿那律)로 한역하기도 한다. 부처님의 10대제자 중 한 사람으로 천안제일(天眼第一)이다.
10)
물음에 대하여 그 가부(可否)를 답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세존께서는 외도들의 열네 가지 물음에 대해 대답하지 않으셨는데 이를 14무기(無記)라 한다. 팔리어로는 avykata이고 이는 ‘단정지어 말한 만한 법이 없다,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11)
『증일아함경』 제6권 4번째 소경을 참조하라.
12)
『증일아함경』 제35권 4번째 소경을 참조하라.
13)
열 가지 일체처정(一切處定)의 하나이다. 일체처정은 변처정(遍處定)이라고도 하는데, 일체 만유를 하나의 대상으로 총합하여 관찰하는 방법이다. 그 대상이 되는 것에 열 가지가 있으니, 곧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ㆍ청(靑)ㆍ황(黃)ㆍ적(赤)ㆍ백(白)ㆍ공(空)ㆍ식(識)이다.
14)
송ㆍ원ㆍ명 3본에는 ‘식(識)’자 앞에 ‘수행(受行)’이 있다.
15)
송ㆍ원ㆍ명 3본에는 ‘受行識是我於想中住周遍其四體’ 14자가 들어가 있다. 이것을 보입하여 번역하면 ‘……두루한다고 보며, 수ㆍ행ㆍ식이 곧 나로서 상 안에 머무르고 온몸에 두루한다고 보나니, 이것이……’가 된다.
16)
송ㆍ원ㆍ명 3본에는 ‘행(行)’자가 없다. 문맥으로 보아도 없어야 마땅하다.
17)
『증일아함경』 제30권 10번째 소경을 참조하라.
18)
팔리어로는 Aggivessana이고 불을 숭배하는 바라문을 일컫던 말이다. 부처님께서는 살차니건자를 화종 거사라고 불렀다.
19)
팔리어로는 Licchavi이고 리차(利車)ㆍ율차(律車)ㆍ리차비(梨車毘) 등으로 음역한기도 한다. 비사리성에 살던 찰리 종족의 이름이다.
20)
팔리본에서는 divvihra라고 하였는데, 이는 점심을 먹은 뒤의 휴식을 뜻하는 말로 주주(晝住)로도 한역한다.
21)
21)경명인데 구나발타라 역본 『잡아함경』 에는 이 경이 없다. 『중아함경』 제4권에 있는 『파라뢰경(波羅牢經)』 과 경명이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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