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27 잡아함경 2권 57~58
57. 질루진경(疾漏盡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그때 세존께서는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사위성으로 들어가 걸식하셨다. 걸식을 마치고 돌아오셔서는 가사와 발우를 지니고 대중에게 말하지 않고 시자에게도 알리지 않으신 채, 동행도 없이 홀로 서쪽 나라로 가 인간 세상을 유행하셨다.
爾時,世尊著衣持鉢,入舍衛城乞食,還持衣鉢,不語衆,不告侍者,獨一無二,於西方國土人閒遊行。
이때 안타(安陀)라는 숲에 있던 어떤 비구가, 대중에게 말하지도 않고 시자에게도 알리지 않으신 채 동행도 없이 혼자서 가시는 세존을 멀리서 보았다. 그는 그것을 보고 존자 아난에게 가서 아뢰었다.
時,安陁林中有一比丘,遙見世尊不語衆,不告侍者,獨一無二。見已,進詣尊者阿難所,白阿難言:
“존자여, 아셔야합니다. 세존께서는 대중에게 말하지 않고 시자에게도 알리지 않으신 채, 동행도 없이 혼자서 유행을 나서셨습니다.”
그러자 아난이 그 비구에게 말하였다.
“만일 세존께서 대중에게 말하지 않고 시자에게도 알리지 않으신 채, 동행도 없이 혼자서 나가 노니신다면 아무도 따라가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 하면 오늘 세존께서는 적멸(寂滅) 속에서 지내며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하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尊者,當知世尊不語衆,不告侍者,獨一無二,而出遊行。”爾時,阿難語彼比丘:“若使世尊不語衆,不告侍者,獨一無二而出遊行,不應隨從。所以者何?今日世尊欲住寂滅,滅少事故。”
그때 세존께서는 북쪽으로 유행하시며 반사국(半闍國)의 파타(波陀)라는 마을로 가, 동산지기가 있는 숲 속의 한 발타살라(跋陀薩羅)나무 밑에 머무셨다.
그때 많은 비구들이 아난에게 찾아가 물었다.
爾時,世尊遊行北至半闍國波陁聚落,於人所守護林中,住一跋陁薩羅樹下。時有衆多比丘詣阿難所,語阿難言:
“세존께서 지금 어디 계십니까?”
아난이 대답했다.
“제가 듣기로, 세존께서는 북쪽 반사국 파타라는 마을로 가셔서 동산지기가 있는 숲 속의 발타살라나무 밑에 계신다고 합니다.”
“今聞世尊住在何所?”阿難答曰:“我聞世尊北至半闍國波陁聚落,人所守護林中跋陁薩羅樹下。”
“존자께서는 아셔야 합니다. 저희들은 세존(世尊)을 뵙지 못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만일 수고를 꺼리지 않으신다면 저희들을 가엾이 여겨 세존께 같이 가주실 수 없겠습니까?”
時,諸比丘語阿難曰:“尊者知,我等不見世尊已久。若不憚勞者,可共往詣世尊?”
그때 존자 아난은 형편을 이해하여 잠자코 허락한 뒤에 많은 비구들과 함께 밤을 지내고,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사위성으로 들어가 걸식하였다. 걸식을 마친 뒤 절에 돌아와 침구를 챙기고, 가사와 발우를 지니고는 서쪽으로 나서 인간 세상을 유행하였다. 거기서 다시 북으로 반사국 파타촌의 동산지기가 있는 숲 속으로 들어갔다. 존자 아난은 많은 비구들과 함께 가사와 발우를 놓고 발을 씻은 뒤, 세존께 나아가 그 발에 머리 숙여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
哀愍故,阿難知時,默然而許。爾時,尊者阿難與衆多比丘夜過晨朝,著衣持鉢,入舍衛城乞食,乞食已,還精舍,擧臥具,持衣鉢,出至西方人閒遊行,北至半闍國波陁聚落人守護林中。時,尊者阿難與衆多比丘置衣鉢,洗足已,詣世尊所,頭面禮足,於一面坐。
그때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들을 위하여 설법해 가르치고,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하셨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어떤 비구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빨리 번뇌[漏]가 다하게 될까?’
爾時,世尊爲衆多比丘,說法,示、教、利、喜。爾時,座中有一比丘作是念:“‘云何知,云何見,疾得漏盡?”
그때 세존께서는 그 비구의 마음 속 생각을 아시고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爾時,世尊知彼比丘心之所念,告諸比丘:
“만일 어떤 비구가 이 자리에서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빨리 번뇌가 다하게 될까’ 하고 생각한다면, 나는 이미 그것에 대해 설법하였느니라. 곧 모든 음(陰)을 잘 관찰하여야 하나니, 그것은 이른바 4념처(念處)ㆍ4정근(精勤)ㆍ4여의족(如意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분(覺分)ㆍ8정도(正道)이니라. 나는 모든 음을 관찰하는 이러한 법을 이미 설명하였느니라.
“若有比丘於此座中作是念:”云何知,云何見,疾得漏盡?’者,我已說法言:‘當善觀察諸陰,所謂四念處、四正勤、四如意足、五根、五力、七覺分、八聖道分。’我已說如是法,觀察諸陰。
그런데도 지금, 부지런히 하고자 하지 않고 부지런히 즐거워하지 않으며, 부지런히 기억하지 않고 부지런히 믿지 않으면서, 스스로 게을러 더욱 나가지 못해 모든 번뇌[漏]를 다하지 못하는 선남자가 아직도 있다. 만일 선남자가 내가 설명한 법에서 모든 음을 잘 관찰하여 부지런히 하고자 하고, 부지런히 즐거워하며, 부지런히 기억하고, 부지런히 믿는다면 그는 능히 모든 번뇌를 재빨리 다할 수 있을 것이다.
而今猶有善男子不勤欲作,不勤樂,不勤念,不勤信,而自慢惰,不能增進得盡諸漏。若復善男子於我所說法,觀察諸陰,勤欲勤樂,勤念勤信,彼能疾得盡諸漏。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색(色)을 나라고 보나니, 만일 그것을 나라고 보면 이것을 행(行)이라 하느니라.
그 행은 무엇이 원인[因]이고, 무엇이 발생[集]시키며, 무엇이 생기게[生] 하고, 무엇이 변한[轉] 것인가? 무명(無明)이 부딪쳐 애욕[愛]이 생기나니, 애욕을 인연하여 그 행을 일으키느니라.
그 애욕은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발생시키며, 무엇이 생기게 하고, 무엇이 변한 것인가? 그 애욕은 느낌[受]이 원인이고, 느낌이 발생시키며, 느낌이 생기게 하고, 느낌이 변한 것이다.
愚癡無聞凡夫於色見是我。若見我者,是名爲行。彼行何因?何集?何生?何轉?無明觸生愛,緣愛起彼行。彼愛何因?何集?何生?何轉?彼愛受因、受集、受生、受轉。
그 느낌은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발생시키며, 무엇이 생기게 하고, 무엇이 변한 것인가? 그 느낌은 접촉[觸]이 원인이고, 접촉이 발생시키며, 접촉이 생기게 하고, 접촉이 변한 것이다.
그 접촉은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발생시키며, 무엇이 생기게 하고, 무엇이 변한 것인가? 이른바 그 접촉은 6입처(六入處)가 원인이고, 6입처가 발생시키며, 6입처가 생기게 하고, 6입처가 변한 것이다.
그 6입처는 무상하고[無常], 함이 있으며[有爲], 마음이 인연하여 일어나는 법[心緣起法]이요, 그 접촉의 느낌과 행의 느낌도 또한 무상하고, 함이 있으며, 마음이 인연하여 일어나는 법이니라.
彼受何因?何集?何生?何轉?彼受觸因、觸集、觸生、觸轉。彼觸何因何集,何生何轉?謂彼觸六入處因、六入處集、六入處生、六入處轉。彼六入處無常、有爲、心緣起法;彼觸受、行受、亦無常、有爲、心緣起法。
설사 이렇게 관찰한다 하더라도 그는 색(色)을 나[我]라고 본다. 색을 나라고 보지 않더라도 색을 내 것[我所]이라고 보며, 색을 내 것이라고 보지 않더라도 ‘색은 나 안에 있다’고 보며, ‘색은 나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나는 색 안에 있다’고 본다.
‘나는 색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수(受)를 나라고 보며, 수를 나라고 보지 않더라도 수를 내 것이라고 보며, 수를 내 것이라고 보지 않더라도 ‘수는 나 안에 있다’고 보며, ‘수는 나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나는 수 안에 있다’고 본다.
‘나는 수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상(想)을 나라고 보며, 상을 나라고 보지 않더라도 상을 내 것이라고 보며, 상을 내 것이라고 보지 않더라도 ‘상은 나 안에 있다’고 보며, ‘상은 나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나는 상 안에 있다’고 본다.
如是觀者,而見色是我;不見色是我,而見色是我所。不見色是我所,而見色在我。不見色在我,而見我在色。不見我在色,而見受是我,不見受是我,而見受是我所。不見受是我所,而見受在我,不見受在我,而見我在受。不見我在受,而見想是我。不見想是我,而見想是我所。不見想是我所,而見想在我。不見想在我,而見我在想。
‘나는 상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행(行)을 나라고 보며, 행을 나라고 보지 않더라도 행을 내 것이라고 보며, 행을 내 것이라고 보지 않더라도 ‘행은 나 안에 있다’고 보며, ‘행은 나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나는 행 안에 있다’고 본다.
‘나는 행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식(識)을 나라고 보며, 식을 나라고 보지 않더라도 식을 내 것이라고 보며, 식을 내 것이라고 보지 않더라도 ‘식은 나 안에 있다’고 보며 ‘식은 나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나는 식 안에 있다’고 보느니라.
不見我在想,而見行是我。不見行是我,而見行是我所。不見行是我所,而見行在我。不見行在我,而見我在行。不見我在行,而見識是我,不見識是我,而見識是我所。不見識是我所,而見識在我。不見識在我,而見我在識。
‘나는 식 안에 있다’고 보지 않더라도 다시 단견(斷見)을 지어 유견(有見)을 부수고, 단견을 지어 유견을 부수지 않더라도 아만(我慢)을 떠나지 못한다. 아만을 떠나지 못하면 다시 나[我]를 보나니, 나를 보는 것, 그것이 곧 행(行)이니라.
그 행은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발생시키며, 무엇이 생기게 하고, 무엇이 변한 것인가? 앞에서 말한 바와 같고 나아가 아만 또한 그러하나니,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면 번뇌가 빨리 다하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不見我在識,復作斷見、壞有見;不作斷見、壞有見,而不離我慢。不離我慢者,而復見我,見我者卽是行,彼行何因?何集?何生?何轉?如前所說,乃至我慢。作如是知,如是見者,疾得漏盡。”佛說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58. 음근경(陰根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동쪽 동산에 있는 녹모강당(鹿母講堂)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해질 무렵에 선정에서 깨어나, 모든 비구들 앞에 자리를 펴고 앉아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一時,佛住舍衛國東園鹿母講堂。爾時,世尊於晡時從禪覺,於諸比丘前敷座而坐,告諸比丘:
“5수음이 있으니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이른바 색수음(色受陰)과 수수음(受受陰)ㆍ상수음(想受陰)ㆍ행수음(行受陰)ㆍ식수음(識受陰)이니라.”
이때 어떤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는 부처님께 여쭈었다.“세존이시여, 5수음이란 색수음과 수수음ㆍ상수음ㆍ행수음ㆍ식수음입니까?”
“有五受陰。云何爲五?謂色受陰,受、想、行、識受陰。”時,有一比丘從坐起,整衣服,偏袒右肩,右膝著地,合掌白佛言:“世尊,此五受陰,色受陰,受、想、行、識受陰耶?”
부처님께서는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佛告比丘:
“돌아가 앉아서 물어라. 내 너를 위해 설명하리라.”
그러자 그 비구는 부처님께 예배하고 다시 본 자리로 돌아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 5수음은 무엇이 근본으로 되고, 무엇이 발생시키며, 무엇이 생기게 하고, 무엇이 부딪친 것입니까?”
“還坐而問,當爲汝說。”時,彼比丘爲佛作禮,還復本坐,白佛言:“世尊,此五受陰,以何爲根?以何集?以何生?以何觸?”
부처님께서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佛告比丘:
“그 5수음은 탐욕이 근본이 되고, 탐욕이 발생시키며, 탐욕이 생기게 하고, 탐욕이 부딪친 것이니라.”
이때 그 비구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 5음(陰)을 곧 집착[受 : 取]이라고 말씀하시니, 참으로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이제 다시 여쭙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음(陰)이 곧 집착[受]입니까? 5음과 집착은 다릅니까?”
“此五受陰,欲爲根欲集、欲生、欲觸。”時,彼比丘聞佛所說,歡喜隨喜,而白佛言:“世尊,爲說五陰卽受,善哉所說!今當更問:世尊,陰卽受,爲五陰異受耶?”
부처님께서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佛告比丘:
“5음이 곧 집착도 아니요, 또한 5음이 집착과 다른 것도 아니다. 다만 거기에 탐욕이 있으면 그것이 곧 5수음이니라.”
“훌륭하신 세존이시여.”
그 비구는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다시 여쭈었다.
“이제 다시 여쭙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두 음(陰)은 서로 관계가 있습니까?”
“非五陰卽受,亦非五陰異受;能於彼有欲貪者,是五受陰。”比丘白佛:“善哉!世尊,歡喜隨喜,今復更問。世尊,有二陰相關耶?”
“그렇다, 그렇다. 마치 어떤 비구가 ‘나는 미래에 이러한 색(色), 이러한 수(受), 이러한 상(想), 이러한 행(行), 이러한 식(識)을 타고나리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을 비구야, 음과 음은 서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니라.”
“참으로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佛告比丘:“如是,如是。猶若有一人如是思惟:‘我於未來得如是色,如是受、如是想、如是行、如是識。’是名比丘陰陰相關也。”比丘白佛:“善哉所說,歡喜隨喜。”
그 비구는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更有所問:
“다시 여쭙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음(陰)이라 합니까?”
“존재하는 모든 색(色)은 과거에 속한 것이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현재에 속한 것이건, 안에 있는 것이건 밖에 있는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아름답건 추하건, 멀리 있는 것이건 가까이 있는 것이건, 그 일체를 통틀어 음이라 하나니, 이것을 음이라 하느니라. 수ㆍ상ㆍ행ㆍ식도 또한 그와 같나니, 비구야, 이것을 음(陰)이라 하느니라.”
“참으로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世尊,云何名陰?”佛告比丘:“諸所有色,若過去、若未來、若現在,若內、若外,若麤、若細,若好、若醜,若遠若近,彼一切摠說陰,是名爲陰。受想、行、識亦復如是。如是,比丘,是名爲陰。”比丘白佛:“善哉所說。歡喜隨喜。”
그 비구는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다시 여쭈었다.
更有所問:
“다시 여쭙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因)과 연(緣)으로 색음(色陰)이라 하며, 무슨 인과 무슨 연으로 수음(受陰)ㆍ상음(想陰)ㆍ행음(行陰)ㆍ식음(識陰)이라 합니까?”
“世尊,何因何緣名爲色陰?何因何緣名受、想、行、識陰?”
부처님께서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佛告比丘:
“4대(大)를 인(因)으로 하고 4대를 연(緣)으로 한 것을 색음이라 하나니, 무슨 까닭인가? 존재하는 모든 색음, 그 일체는 다 4대이거나 4대를 인연하여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접촉[觸]을 인으로 하고 접촉을 연으로 하여 수ㆍ상ㆍ행이 생기나니, 그러므로 이것을 수음ㆍ상음ㆍ행음이라 한다. 무슨 까닭인가? 존재하는 수ㆍ상ㆍ행은 모두 접촉[觸]을 인연하기 때문이다. 명색(名色)을 인으로 하고 명색을 연으로 하기 때문에 식음이라 하나니, 무슨 까닭인가? 존재하는 식은 모두 명색을 인연하기 때문이니라.”
“참으로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四大因、四大緣,是名色陰。所以者何?諸所有色陰,彼一切悉皆四大,緣四大造故。觸因、觸緣,生受、想、行。是故名受、想、行陰。所以者何?若所有受、想、行,彼一切觸緣故,名色因,名色緣。是故名爲識陰。所以者何?若所有識,彼一切名色緣故。”比丘白佛:“善哉所說,歡喜隨喜。”
그 비구는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다시 여쭈었다.
更有所問:
“다시 여쭙겠습니다. 어떤 것을 색에 맛들임[色味]이라 하고, 색의 재앙[色患]이라 하며, 색에서 벗어남[色離]이라 합니까? 수ㆍ상ㆍ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며, 어떤 것을 식에 맛들임[識味]이라 하고, 식의 재앙[識患]이라 하며, 식에서 벗어남[識離]이라 합니까?”
“云何色味?云何色患?云何色離?云何受、想、行、識味?云何識患?云何識離?”
부처님께서는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佛告比丘:
“색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을 일으키면 이것을 색에 맛들임[色味]이라 한다. 만일 색이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색의 재앙[色患]이라 한다. 만일 색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초월하면 이것을 색에서 벗어남[色離]이라 하느니라.
“緣色生喜樂,是名色味;若色無常、苦、變易法,是名色患;若於色調伏欲貪、斷欲貪,越欲貪,是名色離。
수ㆍ상ㆍ행도 마찬가지이며, 식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을 일으키면 이것을 식에 맛들임이라 한다. 수ㆍ상ㆍ행도 마찬가지이며, 식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 이것을 식의 재앙이라 한다. 수ㆍ상ㆍ행도 마찬가지이며, 식에 대해서 탐욕을 항복 받고, 탐욕을 끊으며, 탐욕을 초월하면 이것을 식에서 벗어남이라 하느니라.”
“참으로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若緣受、想、行、識,生喜樂,是名識味;受、想、行、識、無常、苦、變易法,是名識患;於受、想、行、識,調伏欲貪,斷欲貪,越欲貪,是名識離。”比丘白佛:“善哉所說,歡喜隨喜。”
그 비구는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다시 여쭈었다.
更有所問:
“다시 여쭙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아만(我慢)이 생깁니까?”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색(色)에 대해서 ‘나다. 나와 다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고 보고,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 ‘나다. 나와 다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고 보나니, 여기서 아만이 생기느니라.”
“참으로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世尊,云何生我慢?”佛告比丘:“愚癡無聞凡夫於色見我、異我、相在,於受、想、行、識見我異我相在,於此生我慢。”比丘白佛:“善哉所說,歡喜隨喜。”
그 비구는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다시 여쭈었다.
更有所問:
“다시 여쭙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하면 아만이 없어집니까?”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색에 대해서 ‘나다. 나와 다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고 보지 않고,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 ‘나다. 나와 다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고 보지 않느니라.”
“참으로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그 비구는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다시 여쭙겠습니다. 무엇을 알고 무엇을 보아야 번뇌가 다하게 되겠습니까?”
“世尊,云何得無我慢?”佛告比丘:“多聞聖弟子不於色見我異我、相在,不於受、想、行、識,見我、異我、相在。”比丘白佛:“善哉所說,更有所問,何所知、何所見,盡得漏盡?”
“존재하는 모든 색(色)은 과거에 속한 것이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현재에 속한 것이건, 안에 있는 것이건 밖에 있는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아름답건 추하건, 멀리 있는 것이건 가까이 있는 것이건, 그 일체는 나도 아니요, 나와 다른 것도 아니며,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도 아니다. 수ㆍ상ㆍ행ㆍ식도 또한 마찬가지니, 비구야,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면 번뇌가 빨리 다하게 될 것이니라.”
佛告比丘:“諸所有色,若過去,若未來、若現在,若內、若外,若麤、若細,若好、若醜,若遠、若近,彼一切非我、不異我、不相在;受、想、行、識亦復如是。比丘,如是知,如是見,疾得漏盡。”
그때 그 자리에 미련하고 무식한 다른 한 비구가 있었다. 그는 무명(無明)의 껍질에 싸여 삿된 소견을 일으키고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만일 나[我]가 없다면 나가 없는 업을 지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 세상에서는 누가 그 과보를 받을까?’
그때 세존께서는 그 비구의 마음속 생각을 아시고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대중 가운데 만일 지혜도 없고 밝지도 못한 어리석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만일 색에도 나가 없고 수ㆍ상ㆍ행ㆍ식에도 나가 없다면 그는 나가 없는 업을 지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 과보를 받을까’라고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만일 이렇게 의심한다면 먼저 그것을 해석하리라. 어떤가? 비구들아, 색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爾時,會中復有異比丘,鈍根無知,在無明㲉起惡邪見,而作是念:“若無我者,作無我業,於未來世,誰當受報?”爾時,世尊知彼比丘心之所念,告諸比丘:“於此衆中,若有愚癡人,無智明,而作是念:‘若色無我,受、想、行、識無我,作無我業,誰當受報?’如是所疑,先以解釋彼。云何比丘,色爲常耶?爲非常耶?”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무상하다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答言:“無常,世尊。”
“만일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그런데도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이 과연 그런 것에 대해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와 다르다. 이것은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若無常者,是苦耶?”答言:“是苦,世尊。”“若無常苦,是變易法,多聞聖弟子於中寧見是我異我相在不?”答言:“不也,世尊。”
“수ㆍ상ㆍ행ㆍ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만일 ‘존재하는 모든 색(色)은 과거에 속한 것이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현재에 속한 것이건, 안에 있는 것이건 밖에 있는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아름답건 추하건, 멀리 있는 것이건 가까이 있는 것이건, 그 일체는 나[我]도 아니요, 내 것[我所]도 아니다’라고 이렇게 본다면, 그것은 바른 소견[正見]이니라. 수ㆍ 상ㆍ행ㆍ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니라.
“受、想、行、識亦復如是。是故,比丘,若所有色,若過去、若未來、若現在,若內、若外,若麤、若細,若好、若醜,若遠若近,彼一切非我、非我所。如是見者,是爲正見;受、想、行、識亦復如是。
이렇게 보는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곧 그것을 싫어하는 마음을 닦고, 싫어하는 마음을 닦은 뒤에는 탐욕을 떠나며, 탐욕을 떠난 뒤에는 해탈하고, 해탈한 뒤에는 해탈지견(解脫知見)이 생겨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라고 스스로 아느니라.”
多聞聖弟子如是觀者便修厭,厭已離欲,離欲已解脫,解脫知見,‘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셨을 때, 많은 비구들은 어떤 번뇌도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해탈하였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佛說此經時,衆多比丘不起諸漏,心得解脫。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음의 근본[陰根]과 ‘음이 곧 집착인가’라는 문제와
두 음은 서로 관계 있다는 것과
명자(名字) 등의 인(因) 두 가지10)와 맛들임[味]과
아만(我慢)11)과 질루진(疾漏盡)에 대해 설하셨다.
陰、根、陰卽受,
二陰共相關,
名字、因、二味,
我慢、疾漏盡。
雜阿含經卷第二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㓮造
1)
거센 폭류에 휩쓸리지 않고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피난처, 의지처를 의미한다.
2)
고려대장경에는 ‘이(已)’ 자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맞지 않다. 앞뒤의 경문을 참조해 ‘고(苦)’자로 바꾸어 번역하였다.
3)
‘사람들을 위해 분별하고 연설하고 나타내 보이지만 세간의 저 눈먼 장님들은’이란 내용이 원문에선 ‘내지(乃至)로 생략되었다.
4)
원문에 ‘사람들을 위해 분별하고 연설하고 나타내 보이지만 세간의 저 눈먼 장님들은 알지도 보지도 못한다’라는 내용이 ‘내지(乃至)’로 생략되었다.
5)
‘비구들아, 만일 색ㆍ수ㆍ상ㆍ행을 떠나서 식이 머무르는 일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런 일은 말로만 있을 뿐이니, 그것에 대해 여러 차례 묻고 나면 알지 못하여 의심만 더욱 커지게 할 것이다. 왜냐 하면’이라는 내용이 원문에서 ‘내지(乃至)’로 생략되었다.
6)
원문에 ‘내지(乃至)’로 생략된 내용은 위의 『종자경(種子經)』 을 참조하라.
7)
온타남에는 ‘삼세음세식(三世陰世食)’으로 되어있으나 경의 내용으로 보아 ‘삼세음소식(三世陰所食)’이라야 옳다.
8)
3세의 5수음에 먹힌다는 경의 내용으로 보아 ‘삼세음소식(三世陰所食)이라야 옳다.
9)
5음(陰)과 5수음(受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경의 내용으로 보아 ‘음(陰)’이라야 옳다. 따라서 앞에서 경명을 음경으로 붙였다.
10)
『음근경』 본문에서는 색의 인(因)으로 4대를, 수ㆍ상ㆍ행의 인으로 촉(觸)을, 식의 인으로 명색(名色)을 거론하였다. 여기서 명자(名字)는 명색(名色)의 명(名)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11)
위에서 여기까지는 낱낱의 경 제목이 아니라, 모두 『음근경(陰根經)』 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문제들이다.
'1교시 잡아함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24/07/01 잡아함경 3권 64~67 (1) | 2024.07.01 |
---|---|
24/06/27 잡아함경 3권 59~63 (0) | 2024.06.29 |
24/06/26 잡아함경 2권 55~56 (0) | 2024.06.26 |
24/06/25 - 1교시 잡아함경 2권 47 ~ 54 (1) | 2024.06.26 |
24/06/24 - 1교시 잡아함경 2권 43~46 (0) | 2024.06.25 |